<학교 없는 사회> 이반 일리치
<학교 없는 사회> 이반 일리치
#이반일리치 (Ivan Illich)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역사학 박사확위를 받았다.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빈민가에서 보좌신부로 일했다. 1969년 스스로 사제직을 버리고, 80년대 이후
서양 중세사를 가르치며 저술과 강의활동에 전념한다. 성장주의에 빠진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 사회에 비판을 가하는 책들을 저술한다.
#머리말
학교를 통해서는 보편교육을 실현할 수 없다. 현재의 학교 형태를 기반으로 하는 그 어떤 대안적 제도에 의해서도 보편교육은 실현될 수 없다는 얘기다. 학생을 대하는 교사의 태도를 아무리 쇄신해도, 어떤 교육용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교실과 가정에 보급해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생에 대한 교육자의 책임을 아무리 평생토록 연장한다 해도, 보편교육을 실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교육의 새로운 급수관을 찾으려는 현재의 노력은 이 제도와는 정반대되는 것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바뀌어야 한다. 즉 교육이라는 연결망이 사람들 각자에게 기회를 열어주어, 자기 삶의 매 순간을 배움과 나눔과 돌봄의 순간으로 바꿀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10p-8
제1장 국교화된 학교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
학교교육으로는 배움도 정의도 증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육자들은 가르침과 자격증이 한 패키지인 양 주장하기 때문이다. 학습과 사회적 역할 배분이 한데 섞여 하교교육 안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움이란 것이 새로운 기능이나 통찰력의 습득을 뜻하는 데 반해, 사회적 지위 상승은 주로 남들이 제시한 의견에 의존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배움이 가르침의 결과인 경우는 여전히 흔하다. 하지만 직업 시장에서의 역할 및 직종 선택이 단지 학교에 다닌 기간에 좌우된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36p-12
제2장 #학교의현상학
학교 수업을 받는다는 것은 일상 세계로부터 격리되어 원시적이고 마술적이며 치명적인 환경으로 내몰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학교가 젊은이들을 신성한 구역에 수년 동안 계속 강제 유폐하지 못한다면, 일상적 현실의 규범들이 정지된 별세계를 만들 수도 없을 것이다. 전일제 수업이라는 제도 덕분에 교실은 마법의 자궁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성인의 삶으로 마지막 추방되기 전까지 한 주 수업이 끝나거나 학기가 끝날 때마다 규칙적으로 자궁에서 방출되곤 한다. 학교가 없다면 이토록 보편화된 장기간의 아동기라는 것도 있을 수 없고, 숨 막히는 교실의 분의기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76p-13
제3장 진보라는 이름의 의례
자신을 혁명가로 보는 사람들 대부분도 사실은 학교의 희생자이다. 심지어 그들은 '해방'을 어떤 제도적 과정의 산물로 보기까지 한다. 그런 환상에서 깨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 스스로 학교에서 해방되는 것뿐이리라. 대부분의 배움이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은 조작하거나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탈학교화하는 일은 각자의 책임이며, 그럴 수 있는 능력도 각자만이 가질 수 있다. 스스로 학교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것을 변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이 왕권으로 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중 일부가 기성 교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본 다음부터였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끝없이 증대되는 소비로 부터 해방될 수 있으려면 먼저 강제적 학교 제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104p-14
제4장 우리가 선택해야 할 제도
그보다는 스스로 행동하고 참여하고 돕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가르쳐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현 상태-곧 모든 제도가 후기산업적 관료제로 빨려드는 사회-로부터 탈산업화된 공생적 미래-곧 활동의 밀도가 생산을 능가하는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제도의 혁신,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교육제도의 혁신에 착수해야만 한다. 바람직하고 실현 가능한 미래는 우리가 얼마만큼이나 우리의 기술적 노하우를 공생적제도를 성장시키는 데 투자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교육 분야에 있어서는, 현재의 경향을 역전시키려는 의지가 얼마나 큰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135p-14
제5장 #부조리한일관성
지금 일어나고 있는 대항문화는 자기증식적이고 더 엄격한 문법적 효율성보다는 의미론적 내용의 가치가 더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대항문화는 부를 생산하는 문법적 형식보다는 의미 자체가 가진 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문가의 가르침이라는 공인된 품질보다는 자기 선택 하에 이루어진 사적 만남에서 우연히 얻는 수확에 더 가치를 둔다. 제도적으로 고안된 가치를 넘어 뜻밖의 배움을 추구하는 이런 방향 전환은 기존의 질서를 뒤흔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남을 성사시켜주는 기술적 도구의 유용성과, 만남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기술 관료적 통제를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148p-10
제6장 #학습네트워크
제7장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의 부활
우리는 프로메테우스의 아우들과 협력해 불을 붙이고 쇠를 담금질할 사람들의 이름이 필요하다. 하짐만 그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돌보고 기다리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기고 하다.
누구에게나 그만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있다.
이 세계에는 각자 최고의 순간이 있고
이 세계에는 각자 비통한 순간도 있으니
그 어는 순간도 그만의 것이다.
나는 이처럼 희망에 찬 형제자매들을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226p-10
1971년에 출판된 이반 일리치의 오래된 책에서 교육에 대한 급진적인 생각들을 발견한다.
오래전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에 최적화된 인간을 양산하는 자본주의 교육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의 교육은 변하지 못하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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