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빛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 · 숀 켈리
<모든 것은 빛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 · 숀 켈리
#문사철역사읽기모임 쉰두 번째 책 <모든 것은 빛난다> #휴버트드레이퍼스 · #숀켈리
모임을 위해 다시 읽는다. 책의 시작은 #문학평론가 #신형철 의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마지막 부분
#추천도서 다섯권 중 한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중한 내 삶의 빛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의부제 는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 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1장 #선택의짐
2007년 1월 2일은 따뜻했다. 그 주에 나온 신문들은 뉴욕 브루클린 식물원의 싱그러운 벚나무들에 꽃이 만발했다고 보도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여든 시민들로 봄의 희망찬 분위기가 살아났다. 그러나 점심시간 직후 맨해튼 브로드웨이 137번가 지하철 승강장에는 눈 깜박할 사이에 봄기운이 사라졌다. 스무 살의 영화학도 캐머런 홀로피터가 땅바닥에 고꾸라져 경련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시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 남자와 두 여자가 그를 도우러 달려왔다고 한다. 그들의 도움으로 홀로피터는 그럭저럭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승강장 가장자리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이내 지하철 선로 위로 떨어졌다.
15p-3
2장 #우리시대의허무주의
남은 문제는, 길버트나 월러스 둘 중 누가 그들 사이에 놓인 간극을 메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월러스가 취한 니체적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우주에서 유일한 행동 주체이다. 성스러움과 신성함의 개념이 우주에 깃들여 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무로부터 창조를 책임져야 할 존재이다. 이와 반대로 길버트는 루터의 후기 견해를 따른다. 길버트에 따르면, 우리는 신의 진성한 의지를 순수하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신의 은총을 받아들이기 위한 저장소에 불과하다. 이 둘 사이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 저자들은 또 다른 입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이 책 마지막 장까지 그것을 펼쳐보이고자 한다.
104p-17
3장 신들로 가득한 세상 - #호메로스의세계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호메로스의) 신들을 조율자라고 부른다면, (···) 우리는 그들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호메로스의 세계에서는, 문제 상황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가장 훌륭한 삶은 그것과 조율을 이루는 삶이라는 생각이 핵심을 이룬다. 이런 시각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웅면적으로 말해준다. 호메로스가 그려낸 올림포스의 신들은 그리스인들에게 성스러움에 대한 감각을 부여해준다. 진정으로 의미있는 실존의 기쁨과 슬픔을 보증해주는 성스러움 말이다. 이 호메로스의 신들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야말로 신이 죽은 이 시대에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이야말로 일신주의의 몰락에서 우리를 살아남게 하는 방법이며, 허무주의적인 실존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주는 방법이다.
114p-6
4장 #유일신의등장
예수는 인간 존재, 그리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이런 유대교적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킨다. 예수는 밖으로 드러난 행위 대신에 인간의 사적이고 내적인 욕망을 중심으로 가치 있는 삶을 편성한다. 예컨데 산상설교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율법에는 '간음하지 말라'고 쓰여 있으니, 누구든 정욕의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그녀와 간음한 것이니라." 이 말로 인해 이제는 마음의 내적 욕망이 외적 행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된다. 유대교적 관점에서 이것은 미친 생각이다. 나의 욕망은 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은 욕정의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는 것을 금지할 수가 없다. 욕정에 사로잡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법정에 끌고 갈 증인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욕망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욕정을 왜 통제해야 하나? 나의 욕망이 누구를 해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196p-10
5장 #자율성의매력과위험 - #단테에서칸트까지
데카르트는 자신의 철학을 완수하기 위해 지금까지 몰두해온 것에서 벗어나 따뜻한 방에 칩거하기로 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주체와 객체만으로 이루어진 엄격한 세계 위에 윤리학을 정초하는 길을 찾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그의 기여는 매우 획기적이었지만, 윤리학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서양 세계를 완전히 재설정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데카르트는 단테가 악의 특징이라고 보았던 고집스런 자율성을 살려서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신적인 측면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허무주의를 향한 결정적 발걸음을 내딛었다.
248p-5
6장 #광신주의 와 #다신주의 사이
에이헤브가 가장 철저하게 증오한 것은 우주가 종국에는 불가사의 하다는 생각, 궁극적으로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그는 궁극적이고 최종적이며 보편적인 진리, 즉 사물들의 존재 방식에 관한 진리가 있다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고수한다. 그것은 무너가 전통적인 신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이 책이 보여주는 이런 잘못된 일신론적 정념이야말로 가장 위험스럽고 치명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멜빌의 책에서 진짜 사악한 것은, 단 하나에 미쳐 있는 에이해브의 일신주의를 통해서 이 우주가 가장 혐오하는 방식의 육화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285p-14
7장 #우리시대의가치있는삶
이처럼 세계의 다양한 존재 방식들을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서양사 전체에 나타났던 실천적 관례들을 모아보았다. 아마 그런 실천들을 모으는 다른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일신주의의 오랜 유혹에서 풀려난 바로 지금에서야 우리는 이런 존재방식들을 위한 자리를 오늘날의 세계 안에서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의 다양한 존재 방식들에 균형을 잡아주는 다신주의야말로 호메로스가 알았던 그 무엇보다 더 변화무쌍하고 더 흥분되는 것이리라. 이 현대적 다신주의 세계는 성스럽게 빛나는 것들로 이루어진 놀라운 세계일 것이다.
377p-18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도런스 켈리 두 저자들이 펼쳐놓는 3천년의 문학세계를 통해
"불안하고 무기력한 세상, 우리 삶은 어떻게 다시 빛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책
두번의 책읽기와 독서토론을 통해 빛나는 것을 발견하게 하는 책읽기의 행복감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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