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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은유 글 쓰는 사람 2011년 부터 #수유너머 에서 2015년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

자기 경험에 근거해 읽고 쓰고 말하면서 자기 언어를 만들고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뜻을 두고 있다.

#나는왜쓰는가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길었다. 글쓰기에서 문장을 바르게 쓰는 것과 글의 짜임을 배우고 주제를 담아내는 기술은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글을 쓸 것인가'하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탄탄한 문장력은 그다음이다. 열심히 잘 쓰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 '열심'이 어떤 가치를 낳는가 물어야 한다. 밤이고 낮이고 온 국토를 삽질하는 게 '발전'은 아니듯 자신을 속이는 글, 본성을 억압하는 글, 약한것을 무시하는 글, 진실한 가치를 낳지 못하는 글은 열심히 쓸수록 위험하다.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22p-16

들어가며 - #글쓰기의최전선으로

1장 #삶의옹호로서의글쓰기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선동하는 게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는 심심한 진실을 말하고 싶다. 글 쓰는 인권변호사, 글 쓰는 건축가, 글 쓰는 정신과 의사, 글 쓰는 예술가 외에도 글 쓰는 아르바이트생, 글 쓰는 꿈많은 주부, 글 쓰는 종갓집 맏며느리, 글 쓰는 시민단체 활동가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작가와 독자의 분리,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분리, 선생과 학생의 분리, 지식인과 대중의 분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라는 치안적 질서는 각 개인의 능력과 재미를 제한한다. 한 사람이 직업의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존재로 변실할 때, 자기 삶의 풍요를 누릴 수 있고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42p-11

2장 #감응하는신체만들기

3장 #사유연마하기

문제의식이란 거창하지도 까다롭지도 않다.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이다. 의문이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놓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세상의 풍경들, 예를 들면 엄마가 매일 일어나 밥하는 일, 마트 종업원이 기계적인 인사를 건네는 일, 괜히 싫은 감정이 드는 것 등 상황과 감정에 집중하고 관찰하고 질문하는 일이다. 가슴에 물음표가 많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많다. 작은 자극에도 촉발을 받고 영감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물음표가 어느 순간 느낌표로 변하고 다른 삶의 국면을 통과하면 그 느낌표는 또 다시 물음표가 된다. 내가 이렇게 믿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찾아드는 것이다. 그 물음표와 느낌표의 반복과 순환이 자기만의 사유를 낳는다.

137p-17

4장 #추상에서구체로

5장 #르포와인터뷰 기사 쓰기

르포르타주 문학은 나에게 시린 꿈처럼 남아 있다. 접시 닦이, 노숙, 부랑자 생활 등을 자처했던 조지 오웰은 "글쓰기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의 주제, 곧 마땅히 표현해야 될 바를 표현하는 일인데 그건 경험하지 않으면 실상을 드러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일단 현장에서 써야 한다는 것. 동의한다. 오웰은 또한 표현의 방식과 스타일 등 넓은 의미의 작품성은 그 다음에 따라오며 그건 고통스러운 반복 작업과 훈련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동의한다.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말한다는 것. 현장으로 내려갔기에 잘 쓴 게 아니라 충실한 경험에서, 곧 삶에 밀착한 경험에서 좋은 글이 나온 것이다. '삶이 쓰게 하라'는 것. 작가의 윤리와 책무에 헌신하고 글로 생산하는 작가에게 존경이 솟는다. 그래서 나는 글이 힘을 잃고 지리멸렬해진다고 느낄때 조지 오웰을 읽는다. 그의 맵시와 유머와 기품이 어우러지는 문장을 부러워하며 '혹독한 내려감'에 존경을 보낸다.

183p-5

6장 부록

#나오며 - 슬픔이 슬픔을 구원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쓰기가 이것이다. 존재를 닦달하는 자본의 흐름에 익사당하지 않고 제정신으로 오늘도 무사히 살아가기 위한 자기돌봄의 방편이자, 사나운 미디어의 조명에서 소외된 내 삶 언저리를 돌아보고 자잘한 아픔과 고통을 드러내어 밝히는 윤리적 행위이자, 이야기가 사라지는 시대에 이야기를 살려내고 기록하는 곡진한 예술적인 작업으로서의 글쓰기. 그게 돈이든 교양이든 지식이든 학점이든 스펙이든 앞뒤 돌아보지 않고 쌓고 축적하고 평가받기 바쁜 세상에서, 왜 그런 것들을 가져야 하는지 잠시 멈추어서 사유하고 따져 묻는 자리가 되어주는 글쓰기 말이다.

270p-19

요즘 책을 읽는 소비자에서 글을 쓰는 생산자를 생각해 본다.

수많은 고전들의 놀라운 문장들에 눌려 상상하지 못했던 글쓰기에 대해 그 누구의 글도 아닌 자신만의 글쓰기를 제안하는 글

과연 어떤글이 좋은글인가를 생각하면서 나만의 글쓰기를 실천하게 만드는 '글쓰기의 최전선'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