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향기> 한병철
<시간의 향기> 한병철
#서론
오늘날 닥쳐온 시간의 위기는 가속화로 규정할 수 없다. 가속화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우리가 현재 가속화라고 느끼는 것은 시간 분산의 징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시대가 겪는 시간의 위기는
다양한 시간적 혼란과 착오를 초래하는 반시간성 때문이다. 오늘의 시간에는 질서를 부여하는 리듬이 없다.
그래서 시간은 혼란에 빠진다. 반시간성으로 인해 시간은 어지럽게 날아가 버린다.
삶이 가속화된다는 느낌은 실제로는 방향없이 날아가 버리는 시간에서 오는 감정이다.
15p-1
불-시
제때 죽을 수 없는 사람은 불시에 끝날 수밖에 없다. 죽음은 삶이 고유하게 종결될 것을 전제한다.
죽음이란 종결의 형식인 것이다. 의미 있는 종결의 형식을 빼앗긴 삶은 불시에 중단될 수 있을 뿐이다.
종결 내지 완결이 불가능해지고 방향도 끝도 없는 전진, 영구적인 미완성과 새로운 시작만이 남아 있는 세계,
즉 삶이 하나의 형태로, 하나의 전체로 마무리되지 못하는 세계에서는 죽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그래서 삶의 과정은 불시에 끊어지고 만다.
20p-9
#향기없는시간
#역사의속도
현대의 기술을 통해 인간은 땅에서 분리된다. 비행기와 우주선은 인간을 지구의 중력에서 떼어놓는다.
인간이 땅에서 멀어질수록, 땅은 더 작아진다. 인간이 땅 위에서 빨리 움직일수록 땅은 그만큼 줄어든다.
지상의 거리를 극복할 때마다 인간과 땅 사이의 거리는 커져간다. 그리하여 인간은 땅에 대해 소원해진다.
인터넷과 전자우편은 지리를, 아예 땅 자체를 증발시킨다. 전자우편에는 발송지를 알려주는 식별 표지가 없다.
전자우편은 무공간적이다. 현대기술은 인간의 삶을 땅에서 소외시킨다. 하이데거의 "토착성" 철학은
인간을 땅으로 되돌리고 재소여화하려는 시도이다.
46p-5
#행진의시대 에서 난비의 시대로
더 빨리 살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결국 죽기도 더 빨리 죽고 만다.
삶을 더욱 충만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들의 수가 아니라 지속성의 경험이다.
사건들이 빠르게 연달아 일어나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것은 싹트지 못한다. 충족과 의미는 양적인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긴 것과 느린 것이 없이 빠르게 산 삶, 짧고 즉흥적이고 오래가지 않는 체험들로 이루어진 삶은
"체험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 한들 그 자체 짧은 삶일 뿐이다.
65p-17
#현재의역설
향기로운 시간의 수정(水晶)
소설을 통한 프루스트의 시간 실천은 조급성의 시대라고 불린 당대, 예술조차 "짧은 줄에 바짝 묶여 있던"
시대에 대한 반응이었다. 예술은 서사적 호흡을 잃어버렸고, 세계는 전반적으로 가쁜 호흡 속에 빠져들었다.
프루스트에게 조급성의 시대는 곧 모든 "사색"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철도의 시대였다. 프루스트의 시대 비판은
또한 현실을 빠르게 교체되는 이미지들로 해체시키는 영화의 시대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75p-6
#천사의시간 , #향기로운시계 : 고대 중국으로의 짧은 여행
좋은 시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쓸데없는 것"을 비워낸 정신이다. 바로 이러한 비움이 정신을 욕망에서
해방하고 시간을 깊이 준다. 시간의 깊이는 모든 순간을 온 존재와, 그 향기로운 영원성과 결합한다.
시간을 극도로 무상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욕망이다. 욕망으로 인해 정신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마구 내달리는
것이다. 정신이 가만히 서 있을 때, 정신이 자기 안에 편안히 머물러 있을 때, 좋은 시간이 생겨난다.
100p-10
#세계의운무 , #떡갈나무의냄새 , #권태 , #사색적삶
니체는 "활동적 인간의 주된 결점"이라는 제목이 붙은 아포리즘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활동적인 사람들에게는 보통 고차적인 활동이 없다. 개인적인 활동이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관리로서,
상인으로서, 학자로서, 즉 일정한 부류에 속한 존재로서 활동할 뿐, 결코 개별적이고 유일한 특정 인간으로서
활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게으르다. [······] 활동적인 사람들은 돌이 구르듯이 구른다.
어리석은 기계의 원리에 따라서.
166p-11
가쁜 숨을 헐떡이는 사람에게는 정신도 없다.
노동의 민주화에 이어 한가로움의 민주화가 도래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의 민주화가 만인의 노예화로 전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니체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181p-20
부제 "머무름의 기술" 이 붙은 <시간의 향기>를 읽었다.
한병철의 책들을 읽으면서 오늘을 살고있는 나에 대해 생각하게하는 시간을 가지게된다.
빠르게 달리는 속도에만 너무 정신을 팔고 있는것은 아닌지, 지금 멈춰서서 시간의 향기를 맡아보고 싶은 책.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섹타겟돈> 올리버 밀먼 (1) | 2023.11.12 |
---|---|
<가장 큰 걱정 : 먹고 늙는 것의 과학> 류형돈 (0) | 2023.11.05 |
<심리 정치> 한병철 (0) | 2023.10.25 |
<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1) | 2023.10.23 |
<폭력의 위상학> 한병철 (1) | 2023.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