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위상학> 한병철
<폭력의 위상학> 한병철
서론
1부 #폭력의거시물리학
#폭력의위상학
그리스인들은 고문을 아낙카이라고 불렀다. 아낙카이는 "필연", 또는 "불가피성"을 뜻한다.
고문은 운명이나 자연법칙으로 인식되고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 폭력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승인하는 사회의 인식이다. 근대사회가 영혼의 사회라면 이 사회는 피의 사회로서 근대사회와 구별된다.
여기서 갈등은 폭력을 동원함으로써 즉각, 전격적으로 해결된다. 외적 폭력은 영혼의 짐을 덜어준다,
이러한 폭력을 통해 고통이 외부화되기 때문이다. 영혼은 고통스러운 독백의 늪으로 빠져들지 않는다.
폭력은 근대에 들어와 정신화, 심리화, 내면화의 과정을 겪는다.
13p-2
2장 #폭력의고고학
인간은 돈을 더 많이 가질수록 더 강해지고, 더 안전해지고, 더 죽음에서 멀어질 거라고 상상한다.
돈(Geld)은 어원적으로도 이미 희생 및 예배와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돈은 본래 희생 제물이 되는 동물을 구하는 데 사용된 교환수단이 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돈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많은 희생 재물을 가질 수 있다. 즉, 그만큼 많은 동물을 죽여 제단에 바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맹수 같은 커다란 살해 목력의 소유자가 된다.
34p-7
3장 #폭력의심리
후기근대의 성과주체는 의무 이행에 매달리지 않는다. 복종, 법, 의문의 완수가 아니라 자유, 쾌락, 욕구가
그의 좌우명이다. 그는 일에서 무엇보다도 쾌락의 획득을 기대한다. 그는 타자의 명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는 자기 자신의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명령하는
타자의 부정성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타자에서의 자유가 해방과 자유를 안겨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의 변증법은 그것에서 새로운 강제가 발생한다는 데 있다. 타자에서의 자유는 나르시시즘적
자기관계로 전도되며, 이는 성과주체가 겪는 많은 심리적 질환의 원인이 된다.
46p-7
4장 #폭력의정치
지배와 영광은 이미 오래전에 정치의 장을 떠나 자본의 내부 공간으로 옮겨왔다.
광고는 예배와 찬송가의 자본주의 버전이다. 새로운 제품을 찬양하는 스타는 오늘의 천사다.
자본주의적 찬송가는 영광을 생산한다. 그것은 오직 자본에만 바쳐지는 지배의 미적 가상이다.
자본의 지배가 거두어가는 갈채의 이름은 소비다.
102p-2
5장 #폭력의거시논리
왜냐하면 타자에 대한 강한 면역반응은 극단적인 경계 해체와 규제 폐지로 달려가는 지구화 과정에 장애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긍정성의 폭력은 부정성이 없는 같은 것의 공간 속에서 발전한다. 부정성의 결여는 긍정적인
것이 걷잡을 수 없이 번성하게 한다. 긍정성의 번성은 내부적인 현상인 까닭에 어떤 면역저항에도
부딪히지 않는다. 그것은 같은 것의 테러다.
118p-11
2부 폭력의 미시물리학
1장 #시스템의폭력
시스템적 폭력은 긍정성의 폭력으로서, 방해하고 거부하고 금지하고 배제하고 박탈하는 부정성을 알지 못한다.
시스템적 폭력은 과잉과 대량화, 초과, 포만, 소진, 과잉 생산, 과잉 축적, 과잉 커뮤니케이션, 과잉 정보의 형태로
현현한다. 그것은 긍정성으로 인해 폭력으로 느껴지지도 않는 그런 폭력이다. 과소뿐만 아니라 과다도,
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성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긍정성도 폭력으로 귀결된다.
128p-17
2장 #권력의미시물리학
3장 #긍정성의폭력
4장 #투명성의폭력
규율사회의 파놉티콘과 달리 이제 파놉티콘적 통제는 고립과 감금이 아니라 네트워크화를 통해 작동한다.
오늘날 감시는 자유의 침해 속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와 통제가 하나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파놉티콘적 감시 아래 들어간다. 투명한 유저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모두가 인터넷 파놉티콘의 건설에 동참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과 파놉티콘적 감시는 상호 침투하며 구분할 수 없게 뒤섞인다.
160p-5
5장 #미디어 는 매스-에이지다
하나의 특수한 폭력, 긍정성의 폭력이 커뮤니케이션의 무더기, 정보와 기호의 무더기에서 발원한다.
그 무더기는 더 이상 밝혀주고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막대한 양으로 작용할 뿐이다.
메시지 없는 긍정적 무더기는 주의를 흩뜨리고 둔감하게 하고 마비시킨다.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맥루언의 경구는 약간의 수정만으로 긍정적인 것이 대량화된 시대에 적합한 말로 바꿀 수 있다. 미디어는 무더기-시대다.
172p-19
6장 #리좀적폭력
7장 #지구화의폭력
8장 #호모리베르
성과사회는 그 내적 논리에 따라 도핑사회로 발전한다. 단순한 생물학적인 기능으로 축소된 생명은 무조건
건강하게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건강은 새로운 신이다. 따라서 벌거벗은 생명은 신성하다.
성과사회의 호모사케르를 주권사회의 호모 사케르와 구별 짓는 또 하나의 특징은 그들을 죽이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이들의 생명은 완전히 죽지 않은 자들의 생명과 비슷하다.
그들은 죽을 수 있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살 수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는 것이다.
200p-16
철학자 한병철은 우리시대는 부정성의 폭력을 지나 긍정성의 폭력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스스로를 향하는 폭력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현재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리 정치> 한병철 (0) | 2023.10.25 |
---|---|
<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1) | 2023.10.23 |
<아름다움의 구원> 한병철 (1) | 2023.10.15 |
<여섯 번째 대멸종> 엘리자베스 콜버트 (0) | 2023.10.15 |
<나와 타자들> 이졸데 카림 (0) | 2023.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