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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나와 타자들> 이졸데 카림

<나와 타자들> 이졸데 카림

<나와 타자들> 이졸데 카림

1장 과거-#동질사회 라는 환상

우리는 다원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새로우면서도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다.

비다원화 사회, 즉 동질 사회로 돌아갈 방법은 이제 없다. 이렇게 단어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설명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다원화 사회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다르게 던져 보자.

이런 사회에 산다는 건 도대체 무엇을 뜻 할까?

11p-1

2장 지금-#다원화 가 모든 것을 바꾼다

그러므로 무엇이 변하는가라는 질문에 더해 다음 질문들에 분명하게 답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원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는 어떻게 변하는가? 우리의 무엇이 변하는가?

이 대답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변한다.'라는 명제가 다원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35p-20

3장 #종교무대 - 다원화된 신앙인

오늘날 신앙이 치르고 있는 변화와 이동은 결코 신앙의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신앙의 형식과 방법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의 질문은 맞지 않는다. 오히려 어울리는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믿을 것인가?' 그리고 이 변화는 정확히 기존의 두 가지

모순된 요소를 건드린다. 첫째, 다원화는 신앙인의 완전한 정체성을 변화시킨다.

둘째, 전통 안에 배치되는 신앙인의 탈주체화를 변화시킨다.

77p-20

4장 #문화무대 - #근본주의의저항

오늘날 우리 모두는 다원화된 개인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제한받는 개인이다.

그리고 바로 이 경험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효력을 발휘한다. '다원화의 보이지 않는 손' 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가 작동한다. ······ 시장과 비숫하게 '다원화의 보이지 않는 손'도 기적을 낳을 수 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즉 개인의 정체성이 의도치 않게 공동선을 촉진하는 기적이다. 바로 자기 자신이 제한된 정체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 혹은 제한된 정체성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이다.

106p-18

5장 #정치무대 - 팬으로서의 참여

완전 참여에 대한 열망, 즉 개인으로서 참여하고, 존재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이 명확해질 때 그러한 형상은 전형적이다. 3세대 개인주의에서 민주주의적 기본 욕구는 다원화가 가져온 기본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개인이 자신을 재인식할 수 있는 일반적인 형상의 침식, 부재, 불가능이 정확히 이 욕망을 불러왔다. 바로 인정을 향한 욕망이다. 2세대 개인주의의 인정과는 다르다. 오늘날 인정은 온전히 구체적인 개별성에 대한 인정이어야 한다.

158p-21

6장 정치 무대 - #포퓰리즘의부상

통일된 교통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개인들이 이곳에서 서로 방해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간다.

다원화된 개인들은 유사성이 아닌 다양성을, 자신들의 차이를 나눈다. 이렇게 만남 구역을 비유적으로

21세기 다원화 사회의 상징으로 도입해 보았다. 만남 구역은 새로운 고향 이해나 고향에 대한

새로운 그림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231p-`

7장 #정치적올바름의무대 - 좌파와 우파의 정체성 정치

우리는 개방된 정체성으로, 다른 것들 사이에 있는 하나의 선택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닫힌 정체성으로, 차단된 정체성으로 살고 있는가? 너는 누구냐? 라는 질문은 중요하지 않다. 훨씬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너는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너는 오스트리아인, 터키인, 체첸인으로 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너는 그리스도교인, 유대교인, 무슬림 혹은 무신론자로서 어떻게 사는가?

이것이 다원화 사회의 질문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핵심 질문이다.

293p-8

21세기 우리는 '나와 타자들'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울타리를 치고, 장벽을 세우며, 철조망을 쳐서 변화의 반대편에 서지만 쉽지 않다.

과연 우리는 다원화 사회에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