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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서문 - 사랑의 재발명

1장 #멜랑콜리아

그런데 이러한 사회학적 사랑 이론들은 오늘날 사랑이 무한한 자유나 무제한의 가능성보다는 어떤 다른 변화로 인해 훨씬 더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사랑의 위기를 초래한 것은 단순히 다른 타자의 공급이 넘치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오늘날 모든 삶의 영역에서 타자의 침식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 이와 아울러 자아의 나르시시스트화 경향이 강화되어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 타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사실 극적인 변화 이지만, 치명적이게도 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이 진행중이라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17p-9

2장 #할수있을수없음

성과사회는 금지 명령을 발하고 당위('해야 한다')를 동원하는 규율사회와 반대로 전적으로 '할 수 있다'라는

조동사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생산성이 어느 지점에 이르면 해야 함은 곧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해야함은 할 수 있음으로 대체된다. 착취를 위해서는 동기 부여, 자발성, 자기 주도적 프로젝트를 부르짖는 것이 채찍이나 명령보다 더 효과적이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의 경영자로서 명령하고 착취하는 타자에게

예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자유롭다고 할 수 있지만, 결코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주체는 자기 자신을, 그것도 자발적으로 착취하기 때문이다.

29p-2

3장 #벌거벗은삶

모든 삶의 영역이 긍정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사랑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과잉이나 광기에 빠지지

않은 채 즐길 수 있는 소비의 공식에 따라 길들여진다. 모든 부정성, 모든 부정의 감정은 회피된다. 고통과 열정은

안락한 감정과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흥분에 자리를 내준다. 속성 섹스의 시대, 즉흥적 섹스, 긴장 해소를 위한

섹스가 가능한 시대에는 성애 역시 모든 부정성을 상실한다. 부정성의 완전한 부재로 인해 오늘날 사랑은 소비와

쾌락주의적 전락의 대상으로 쪼그라든다. 타자를 향한 갈망은 동일자의 안락함으로 대체된다.

51p-13

4장 #포르노

포르노의 매력은 "살아 있는 성애 속에서 죽은 섹스를 예감"하게 한다는 데서 나온다. 포르노가 음란한 것은 과다한 섹스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섹스가 없다는 사실이 포르노를 음란하게 만든다. 오늘날 성애를 위협하는 것은 쾌락을 적대시 하면서 섹스를 뭔가 "더러운 것"처럼 피하는 "꺠끗한 이성"이 아니다. 성애는 바로 포르노그래피에 의해 위기에 빠진다. 가상공간에서의 섹스만이 포르노인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는 실제 섹스 역시 포르노로 변질된다.

65p-6

5장 #환상

과잉가시성은 문턱과 경계의 해체 과정을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것은 투명사회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다.

평탄하게 다듬어진 공간은 투명하다. 문턱과 다리는 아토포스적 타자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비밀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지대다. 경계와 문턱이 사라짐과 동시에 타자에 대한 환상도 사라진다. 문턱의 부정성이, 문턱의 경험이 없는

곳에서는 환상도 위축된다. 오늘날 예술과 문학이 직면한 위기의 원인은 환상의 위기,

타자의 소멸, 즉 에로스의 종말에서 찾을 수 있다.

80p-7

6장 #에로스의정치

포르노적 이미지 에서는 어떤 타자의 저항도, 어떤 실재의 저항도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는 어떤 예의도, 어떤 거리도 없다. 포르노적이라는 것은 바로 타자와의 접촉, 타자와의 만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를 낯선 것의 접촉과 감정적 격동에서 지켜주는 자기성애적인 자기 접촉, 자기 애착은 포르노적이다.

86p-10

7장 #이론의종말

플라톤은 에로스를 철학자(필리소포스), 즉 지혜의 친구라고 부른다. 철학자는 친구이며, 사랑받고 사랑하는 연인이다. 하지만 이 연인은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개인도 아니고, 어떤 경험적 사태도 아니다. 그것은 "사유 속에 들어 있는 어떤 내적 현존, 사유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 하나의 생동하는 범주, 초월적인 경험이다. 강한 의미에서의 사유는 에로스가 아니라면 시작조차 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친구, 혹은 연인이었던 사람만이 사유할 수 있다.

97p-5

#한병철 교수의 작고 얇은 책 <에로스의 종말> 에는 21세기 우리시대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

타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도시인들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게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에로스를 잃어버리고 동시에 사유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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