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상. 도스또예프스끼

<죄와 벌> 상. 도스또예프스끼
그는 본래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그의 성격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부터인가 긴장과 초조상태에 있는 우울증 환자처럼,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서
여주인뿐만 아니라 누구와도 만나기를 꺼릴 정도로 사람들로 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그는 가난에 찌들어 있었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그런 절박한 사정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게 되었다.
11p-14
"맙소사!"그는 부르짖었다. "정말, 정말로 나는 진정 도끼를 들고, 노파의 머리를 내리찍으려 하는 것일까,
그 정수리를 부수려고 하는 것일까······. 끈적끈적하고 따뜻한 피 위를 미끄러지면서, 자물쇠를 깨고 도둑질까지
하려는 것일까?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피투성이의 몸을 숨기려고 하는 것일까······? 도끼를 가지고서······?
오, 맙소사. 정말로 그렇게 하려는 것일까?"
92p-23
2부 죄를 저지르고 나서 그는 혼란스러움에 빠지기 시작하고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밖으로 나와 곧장 광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한번 경찰서에서 맛보았던 것과 같은
참을 수 없이 강렬한 기쁨이 순식간에 그를 사로잡았다. <증거는 인멸되었다! 어느 누가, 어느 누가 그 돌 밑을 뒤져
볼 생각을 하겠는가? 그 돌은 집이 지어질 때부터 그곳에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렇게 박혀 있을 것이다.
그 물건을 찾아낸다고 해도, 누가 나를 의심하겠는가? 모든 것은 끝났다! 증거물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웃기 시작했다. 그는 나중에 자기가 소리 죽여 신경질적으로 오랫동안 웃었다고 기억했다.
161p-17
라스꼴리니꼬프는 벽 쪽으로 돌아누워서, 누렇게 바랜 더러운 흰 꽃무늬 벽지에서 밤색 선으로 그려진
못생긴 흰색 꽃을 한 송이 골라, 그 꽃에 잎이 몇개나 있는지, 잎 가장자리의 톱니 모양은 어떻게 생겼는지,
선은 몇개나 그려져 있는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팔다리가 마비되어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 같았지만,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 볼 생각조차 못하고, 고집스럽게 꽃만 응시했다.
197p-5
그는 열에 들떠 있었지만, 그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조용하고 느릿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다만 불현듯 느끼게 된 강렬한 삶의 감각, 이 새롭고 무한한 감정에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이 감정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느닷없이 뜻밖의 사면을 받은 사람이 느낀 것과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272p-4
3부 주인공 로쟈의 어머니와 누이동생 두냐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갈등과 반전이 일어나는 장
그런 면에서 우리모두는 사실 미친 사람과 거의 비슷할 때가 무척 많이 있습니다.
다만 아주 작은 차이로 <환자들이> 우리보다는 약간 더 미친 거지요. 어쨌든 선을 그어야만 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조화로운 인간이란 전혀 없다고도 볼 수 있지요. 이건 사실입니다. 수만 명, 아니 어쩌면 수백만 명 중
한 사람 꼴로 만나 볼 수 있을까요? 그것도 그다지 확실하지 않은 본보기에 불과하지만요······.
329p-12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말씀하세요, 뭐가 필요하십니까?"
"나는 당신이 자지도 않으면서 자는 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낮선 사내는 조용히 웃으면서 야릇한 어조로 대답했다.
"나는 아르까지 이바노비치 스비드리가일로프입니다. 인사드리겠소이다······."
406p-2
<죄와 벌> 상. 권이 끝났다. 도스또예프스끼 특유의 지독하게 긴 서술들과 이야기의 세계에 익숙해지면서
그 속에서 절묘한 인간들의 심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한페이지 쓰기도 어려운 '범인' 들에게 보여주는
'비범'한 소설가의 절묘한 서술을 통해 과연 문학이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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