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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슈테판츠바이크 (Stefan Zweig 1881~1942) #오스트리아 빈에서 부유한 #유대계 방직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빈대학 에서 여러 언어를 배우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공부한 후 1904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무살 때 시집으로 창작을 시작했다.

1938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영국과 미국, 브라질 등지에서 망명 우울증에 시달리다 1942년 부인과 함께 자살했다.

옮긴이의 글 - 시대를 비판한 츠바이크의 용기

머리말 - 모든 정신적 독재에 대항한 위대한 인문주의자

그렇다면 그에게 항변한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 '사상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 정신적인 독재자에게 싸움을 건 고독한 이상주의자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는 과연 누구인가? 칼뱅의 환상적인 권력에 비하면 그야말로 '코끼리 앞의 모기'였다! 이름 없는 사람, 공적인 영향력 면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 게다가 실제로 가진 것도 없어 거지와 다름없는 학자였고, 번역과 가정교사 일을 해서 겨우 처자식을 돌보는, 거쳐도 시민권도 없는 망명자, 이중 피난민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광신주의 시대에 인문주의자는 서로 싸움질하는 광신자들 사이에서 아무런 힘도 없는 철저히 고독한 존재일 뿐이었다.

13p-9

제1장#칼뱅의권력장악

스물네 살이 된 칼뱅은 예언자적 확신을 가지고 개혁파의 자기분열에 맞서서 제때에 새로운 교리의 정신적인 요체를 한 권의 책, 하나의 도식,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집약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개혁파 지도자들이 개별적인 문제들을 놓고 다투고 있을 때, 이 이름 없는 젊은 법률가이자 신학자는 젊음이 가진 찬란한 무모함으로 확고하게 전체를 지향했다. 그리하여 일 년 만에 <기독교 강요 Institutio Religionis Christianae>(1535) 를 내놓아 최초의 개신교 교리의 기반을 닦았다. 그것은 교리책이자 안내서이며 개신교의 기본서였다.

41p-2

제2장 자유를 질식시킨 #광신주의

이 숭고한 유토피아의 이념으로 무장한 강철 같은 이념의 인간은 그것을 무섭도록 진지하고 정직하게 생각했다. 25년간 정신적 독재를 펼치면서 칼뱅은 사람들에게 가차 없이 모든 개인적 자유를 빼앗는 것이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이 경건한 폭군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친 온갖 요구들을 하면서 자신은 오직 사람들에게 참되게 살라고,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의지와 뜻에 따라서 살라고 요구했을 뿐이라고 믿었다.

63p-14

제3장 자유와 양심의 수호자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세계관과 세계관 사이에서 복수 단념의 서약이 이루어졌지만, 가장 깊은 내면에서 계속되는 이러한 대립은 지속적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자유는 독재의 그림자 속에서 스스로 만족했다고 느낄 수는 없으며, 단 한 명의 독자적인 인간이 자신의 영토 안에 똑바로 살고 있어도 독재자는 근심 없이 지낼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아직은 잠재된 긴장을 폭발시킬 만한 계기가 필요했다. 칼뱅이 세르베투스를 화형하기 위해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을 때, 마침내 카스텔리오의 입에서 고발의 언어가 터져나왔다.

120p-14

제4장 #불운한희생양

제5장 '다른 의견'의 비극적 종말

이 두려운 순간에 칼뱅은 어디에 있었던가? 그는 공평하게 보이려고, 아니면 자신의 신경을 보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집에 남아 있었다. 그는 창문을 닫고 자기 방안에 틀어박힌 채 형리와 그보다 잔인한 신앙의 형제 파렐에게 무시무시한 일을 맡겼다. 죄 없는 사람을 염탐하고 고소하고 자극해서 화형대로 이끌기까지 칼뱅은 조금도 지치지 않았고, 어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그러나 처형의 순간에는 오직 돈을 주고 고용한 형리들만을 볼 수 있을 뿐, 이 '경건한 살해'를 명령한 진짜 책임자는 볼 수 없었다.

173p-23

제6장 #관용의선언

"이단자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나는 우리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우리가 이단자라 부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지극히 단순한 말로, 너무나 자명해서 진부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것을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말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무서울 정도의 도덕적인 용기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러한 발언은 한 힘없는 인간이 시대 전체, 그 지도자들, 영주와 설교자들, 가톨릭 교도와 루터파들의 뺨을 때린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의 잔인한 이단사냥은 무의미한 일이며 도덕적인 광증일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

198p-1

제7장 폭력의 맞서 양심이 일어서다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일 뿐이다," 참되고 명료하다는 점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가장 인간적인 장엄한 말이다. 카스텔리오는 마치 단단한 금속에 새겨넣은 것 같은 이 한 문장으로, 모든 시대에 걸쳐서 세계관 차이로 인해 이루어지는 박해에 판결을 내렸다. 한 인간을 제거한 일을 변명하기 위해 그 어떤 논리적·윤리적·국가적·종교적 핑계를 댄다 해도, 그것은 살인을 했거나명령한 사람에게서 개인적인 책임을 면제시켜주지 못한다. 인간의 피를 흐르게 한 것은 언제나 유죄이며, 세계관을 이유로 살인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227p-18

제8장 폭력이 양심을 제거하다

1563년 12월 29일에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는 48세의 나이로 운명했다. 내막을 잘 아는 한 친구가 그의 죽음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도움으로 적들의 발톱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죽음과 더불어 비방도 멈추었다. 바젤 시민들은 너무 뒤늦게 자신들이 가장 훌륭한 시민을 제대로 옹호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의 유산은 이 순수하고 위대한 학자가 얼마나 사도의 청빈을 지키며 살았던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집에는 단 한 닢의 은화도 없었다. 친구들이 돈을 내서 관 값을 지불하고 얼마간의 빚을 갚아주고 장례비용을 치르고 성년이 안 된 아이들을 자기 집에 받아들여주었다.

270p-2

제9장 #카스텔리오의부활

우리 세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백 년 동안 이 자유의 이념은 절대적으로 당연한 것으로서 유럽을 지배했다. 모든 국가의 기본원리에 개인의 권리가 양도될 수 ㅇ벗고 영원불변한 것으로 헌법 안에 새겨졌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적인 억압, 사상의 독재, 의견 검열의 시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정신적 자유에 대한 개인의 요구가 지상의 육체에 대한 권리만큼이나 확보되었다고 믿으려고 했다. 그러나 역사는 밀물과 썰물이며, 끊임없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것이다. 하나의 권리는 절대로 영원히 확보된것이 아니며, 어떠한 자유도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폭력에 대해서 안전하지 못하다.

286p-9

책의 표지에 붉은 색은 신정국가를 건설한 칼뱅의 초상화이고 검은 색은 관용을 부르짖엊던 위대한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의 초상이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인물의 삶을 멋지개 대비해서 보여준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작가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확인했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