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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자서전> 안중근

<안중근 자서전> 안중근

<안중근 자서전> 안중근

#안중근 (1879~1910)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던 그는 유독 활쏘기와 사냥을 즐겨 하였다. 열여섯 나이에 김아려와 결혼 하였으며,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열일곱 살에는 천주교에 입교하여 세례를 받고 '도마'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만행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미래의 인재를 육성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쏘아 사살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죄로 뤼순 감옥에서 갇혀 지내는 동안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집필하였으며, 1910년 3월 26일 서른 두해의 짧고도 치열했던 삶을 마감한다.

저자 소개

#안응칠역사 1909년 12월 13일 음력 11월 1일 쓰기 시작하다

친교를 나누던 학생들이 서로 권면하여 말해 주었다. "너의 부친께서는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이 나셨는데, 너는 무슨 까닭으로 무식한 하급 인간으로 자처하려 하는가?" 내가 말했다. "네 말이 옳다. 그러나 내 말도 한 번 들어 봐라. 옛날 초나의 패왕 항우는 글은 이름이나 쓸 줄 알면 족하다고 하였지만 오히려 초패왕의 명예는 만고의 영웅으로 천고에 전한다. 나는 학문으로 이름을 남길 생각이 없다. 저 항우도 대장부요, 나도 대장부다, 너희들은 또다시 나를 권면하려 하지 마라."

14p-8

#이토히로부미 를 쏘다

이에 더 말할 것이 없이 즉시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나아가 군대가 열지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바라보니, 러시아의 관리들이 호위하여 둘러싸고 오는 앞쪽의 일개 한 명의 얼굴이 누렇고 머리가 센 조그마한 노인네가 염치없이 감히 천지간을 횡행하고 있었는가! 저것이 필시 노적 이토일 거라 여기고 즉시 단총을 꺼내어 우측을 향하여 4발을 쏘았다. 그런 뒤 생각해 보니 의문이 뇌리에 스치기를, 내가 이토의 얼굴을 모르므로 만일 한 번 잘못 쏜다면 큰일에 낭패를 보는 것이라. 다시 뒤로 돌아서서 일본인 무리 중에 가장 위엄있어 보이며 전면에서 앞장서는 자르 목표로 삼아 3발을 연사했다.

122p-7

#뤼순 감옥으로

이에 내가 다시 분명히 말했다. "이토의 죄상은 천지의 귀신과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데, 내가 무슨 오해를 했단 말이오. 더구나 나는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을 죽인 범죄자가 아니오. 나는 대한국의 의병 참모중장의 의무로 소임을 가지고 하얼빈에 이르러 전쟁을 일으켜 습격한 끝에 포로로 잡혀 여기에 온 것이다. 뤼순커우 재판소는 일절 관계가 없으니 마땅히 만국공법과 국제공법으로써 판결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오."

138p-9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유언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뒤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모두 각각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ㅊ너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147p

도마 안중근이 뤼순 감옥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한 <안중근 자서전>

서른둘의 짧은 생애를 불꽃같이 살다간 젊은 영웅의 삶을 통해 태산처럼 무거운 인간의 삶을 만났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표본을 보여준 한 사람 안중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