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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의 일곱개의 달> 셰한 카루나틸라카

<말리의 일곱 개의 달> 셰한 카루나틸라카

<말리의 일곱 개의 달> 셰한 카루나틸라카

#한국어판 서문 - 친애하는 대한민국의 독자 여러분께

첫 번째 달

너는 심장이 뛰지 않는 상태로 태어나 인큐베이터 안에서 생명을 건졌다. 부처가 나무 아래 앉아서 결국 깨달은 것을, 너는 태아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애당초 세상에 나오지 않는 것이 낫다. 태어나자마자 들어간 유리 상자 안에서, 직감에 따라 그냥 꼴까닥했어야 했다.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다. 어른들이 시키는 게임을 모조리 때려치웠다. 체스는 2주 만에, 컴스카우트는 한 달 만에, 럭비는 3분 만에, 너는 팀과, 게임과, 그런것들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에 대한 혐오를 안고 학교를 떠났다.

19p-5

두 번째 달

"왜 빛으로 들어가라고 자꾸 떠미세요?" "중간계는 혼잡하다. 이승의 정신세계를 오염시키고 있어. 너무 많은 식시귀들이 돌아다니면서 잘못된 사람들의 귀에 나쁜 생각들을 불어넣고 있다." "그렇다면, 모두가 빛으로 들어가면, 호랑이 반군이 싸움을 멈추고 정부도 납치를 멈추겠군요. 그런 시나리오인가요?" "중간계는 절망을 먹고 사는 존재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중간계가 텅 비면, 부자들이 도둑질을 멈추고 빈자들이 굶주리지 않겠군요?" "여기 있으면, 당신도 그들과 같은 존재가 돼.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르고." "친구들에게 경고해야 합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나를 죽인 사람이 내 사진을 훔칠 거예요. 누가 훔치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아무도 관심 없어, 뿌따. 아무도, 이제 여섯 번의 달이 남았다. 이제 우리 깔까?"

142p-16

세 번째 달

모든 사람이 우주에게 묻고 싶어 하는 질문을 너도 하고 싶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왜 죽을까, 왜 이런 모든 것들이 존재해야 할까. 우리의 대답은 이게 전부다. 나도 몰라, 멍청아, 그만 물어봐, 사후세계는 생전만큼 혼란스럽고, 중간계는 저 아래 못지않게 제멋대로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꾸며낸다. 어둠이 두려워서.

285p-14

네 번째 달

"누가 우릴 엿 먹였죠?" "포르투갈은 선교사의 자세로 우리를 엿 먹였지. 네델란드는 뒤에서 박았고. 영국이 왔을 때 우리는 이미 무릎이 꿇리고 두 팔을 뒤로 한 채 입을 벌리고 있었어." "영국이 우리를 지배해서 다행이에요." 너는 말한다. "프랑스한테 학살당하는 것보다 나았지." "벨기에 노예 생활보다 나았죠." "독일한테 독가스로 죽는 것보다 나았고." "스페인한테 강간당하는 것보다 나았고."

370p-20

다섯 번째 달

"왜 스리랑카는 자살자 수가 세계 제일일까?" 소녀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다.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슬프거나 폭력적이라서 그런가?" "알게 뭐야." 구부정한 형체가 말하는 순간,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늘인 여자가 난간에서 높이뛰기를 한다. "세상이 잔인한 곳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딱 그 정도로 교육을 받기 때문에 그런 거야." 여학생은 말한다. "무력하다고 느낄 딱 그정도의 부패와 불평등도 만연해 있고.""제초제도 쉽게 구할 수 있지." 곱추가 말한다.

403p-17

여섯 번째 달

그들은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고, 너는 필생의 역작에 둘러싸인 겔러리에 앉아 기다린다. 천산갑과 집단학살의 사진들로 장식된 벽을 응시한다. 진실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지만, 스리랑카에서 진실은 인간을 감옥에 가두기도 한다. 진실이나 감옥, 살인자와 완벽한 피부를 지닌 연인은 더 이상 네게 필요하지 않다. 네게 남은 것은 이제 유령들의 이미지뿐, 아마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433p-20

일곱 번째 달

고작 열 살 난 아들에게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다가 했던 말 중에서 몸이 오그라들지 않았던 말이 떠오른다. "선과 악의 전투가 왜 항상 일방적인지 아니, 말린? 악은 더 잘 조직되어 있고, 무기가 많고, 보수도 세기 때문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괴물이나 약카, 악령이 아니야. 자기들이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조직적인 집단, 그것이야말로 우리가치를 떨어야 할 상대다."

480p-17

옮긴이의 말 - 먼곳에서 도달한 목소리

여러번의 개정을 거쳐 다른 제목으로 출간된 이력이 있는 책 <말리의 일곱개의 달>

익숙하지 않은 스리랑카 현대사의 가슴아픈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생각한다.

인간들이 저지른 악행들의 한계는 어디인가? 그리고 그 피해를 온생명으로 받아던 사람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