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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관용> 웬디 브라운

<관용> 웬디 브라운

<관용> 웬디 브라운

#웬디브라운 (Wendy Brown) #프린스턴 대학 #정치철학 박사,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정치학과 교수

#맑스#니체 , #푸코 등을 이론적 자원 삼아, 후기 자유주의의 정치적 조건들과 #정체성정치 의 한계를 분석한 저작으로 주목 받았다.

부제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2010년 출간한 정치철학 도서

1장 #관용 : #탈정치화담론

이 책이 붙잡고 씨름하고자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현대 미국에서 통용되는 관용 담론은 어떤 종류의 정치적 담론이며, 어떠한 사회적·정치적 효과를 낳고 있는가? 관용 담론에 대한 분석적 연구는,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식민주의·제국주의의 긴밀한 결합 관계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이어지는 장들에서, 나는 관용 담론의 사회적·정치적 작동 방식을 추적해, 관용이 어떻게 자유주의적 주체·문화·체제 대 비자유주의 주체·문화·체제라는 분할선을 만들어 내는지 살펴볼 것이다. 또한 관용 담론이 오늘날의 다양한 갈등과 차별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어떤 방식으로 규범적 효과를 생산하며, 동시에 어떻게 이러한 자신의 규범적 성격을 은폐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22p-1

3장 관용 : #대리보충- "유대인 문제"와 "여성 문제"

일반화 시키자면, 이성애적 젠더는 관용의 대상일 수 없는 반면, 이성애적 구조에서 일탈한 주체들- 동성애자를 포함해 트랜스젠더나 트랜스섹슈얼한 존재들 - 은 즉각적으로 관용 담론을 소환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젠더 지배 구조는 노골적으로 여성을 배제하고 비체화하는 규범적 담론이 아닌, 이성애적 가족 구조와 가족-경제 관계, 성적 분업 등을 통해 지배를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관용은 자유주의적 평등의 구호가 적용될 수 있는 경계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관용의 실천은 관용의 대상이 되는 타자가 정치적으로 시민권 규범의 외부에 놓여 있음을, 그 타자가 여전히 정치적 타자이며, 자유주의 평등 담론 속으로 완전히 편입될 수 없고, 또한 종속을 유지시키는 분업 구조를 통해 관리될 수도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131p-1

5장 #관용 : #박물관의전시물 - <시몬 비젠탈 관용박물관>

관람객을 목격자이자 참여자로 구성하는 <홀로코스트의 집>의 전시방식은, 해석을 배제하고 권위를 확립하는 오늘날 만연한 진리 전략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역사학자 조앤 스콧이 말했듯이, 경험을 진리에 다가가는 믿을만한 통로로 여기는 에스피테메 하에서, 어떤 것을 목격하고 경험하는 행위는 비판적 분석이나 해석의 필요성을 제거해 버리기 마련이다. 현전의 형이상학이 사건의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것을 그것에 대해 아는 것과 등치시키는 한, 어떤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앎의 흔들리지 않는 근거가 된다. 보는 것과 경험하는 것을 조합함으로써, <홀로코스트의 집>은 자신의 내러티브에 권위를 부여한다. 이곳에서 본 것과 경험한 것 모두가 실은 특정하게 재현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29p-24

6장 #관용의주체들 - 문명인 '우리'와 야만인 '그들'

관용 담론은, 자유주의에 존재하는 문화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이러한 미끄러짐을 인정하지 않으며, 다만 정치적인 형태로 분출하는 문화적·종교적·인종적 차이의 주장들을 탈정치화시키고 관리하려 시도할 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관용은 자유주의의 보편성이 위협받는 순간에 이를 구원하는 대리 보충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안은 자유주의를 거부하거나 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을 성찰하고, 자유주의가 지금까지 자신의 타자이자 구성적 외부로 삼아왔던 것들과의 조우 속에서 변화될 가능성을 개방하는 데 있다. 이러한 개방은, 도덕적 자율성과 유기체 간의 대립 구도 혹은 세속주의와 근본주의 간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복수의 목소리를 가진 서구 사회와 이슬람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281p-14

7장 관용 : #문명담론

이러한 개념의 미끄러짐을 통해, 오사마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을 문명의 적으로 뭉뚱그리는 것이 가능해지며, 테러와의 전쟁이 어느 순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정권 교체를 위한 전쟁으로 자연스레 변화할 수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이라크의 위험성을 통해 정당화되었던 이라크 전쟁은, 어느 순간부터 (서구에 의한) 해방을 열망하는 이라크 민중의 이름으로 정당화 된다. 자유주의의 관용구로서 관용은, 단지 문명화되고 자유로운 이들의 상징으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억압적이면서 외적으로 위험한, 즉 불관용적이며 따라서 관용 불가한 우리시대의 야만적 대립항에 맞설 수 있는 문명 진영의 권리 자체를, 관용이 생산해 내는 것이다.

325p-23

일반적인 용어 "관용"을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의 정치적 입장으로 풀어낸 책

힘 있는 자의 호혜적 행위 "관용"이 정치적으로는 문명과 반문명의 대립으로 이해되어 사용된다.

하나의 단어가 정치적으로 새롭게 사용되는 것을 분석한 정치철학 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