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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유제프 차프스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유제프 차프스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유제프 차프스키

유제프 차프스키는 소비에트 연방 그랴조베츠 포로 수용소에 함께 수용되어 있던 포로들을 위해

1940년부터 이듬해인 1941년까지 마르셀 프루스트를 주제로 강의를 했다. 이 글은 1943년과 1944년 초에,

다행히 파손되지 않고 남은 그의 노트 일부를 타자기를 사용해 옮긴 것이다.

7p-2

영하 45도까지 떨어지는 추위 속 노역으로 완전히 녹초가 된 채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의 초상화 밑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당시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제에 대한 강의를

열중해 듣던 동료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 나는 감동에 젖어 프루스트를 생각하곤 했다.

12p-13

고백하자면, 그때 나를 사로잡은 것은 프루스트가 다루는 이야기와 그것에 담긴 의미였지

문학적 질료나 형식이 아니었다. 사라진 알베르틴과 버림받은 남자의 절망 그리고 불안,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형태의 질투와 고통스러운 추억들을 열병에 걸린 듯 묘사하며 그 모든 것을

탐색하는 이 무시무시한 작가는, 난삽해 보일 정도로 복잡한 수많은 디테일을 선보였다.

42p-3

프루스트는 작품 집필에 들어가면 작은 소리도 참지 못했다.

생애 마지막 몇 해 동안 그는 벽 전체를 코르크로 덮은 방의, 피아노 바로 옆에 붙여놓은 침대에서

거의 누워 지냈다. 책들이 피아노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침대 옆 탁자는 약봉지와 신경질적으로 쓴 듯싶은

원고들로 그득했다. 프루스트는 오른쪽 팔꿈치에 몸을 기대고 누워서, 다시 말해 가장 불편한 자세로 글을 썼는데,

어느 편지에 썼듯 그에게는 "글을 쓰는 것이 순교" 같았다.

51p-12

어마어마한 노동이 기다리는 집으로, 다시 말해 글쓰기라는 새로운 삶으로 돌아오면서,

프루스트는 첫차가 다닐 시각에 잘못하면 그 전동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기괴한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알다시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마지막 권인 <되찾은 시간>은 그의 사후에 출판됐다. 당연히 작가의 수정을 거치지 않았으며 다른 권들보다

앞선 시기에 쓰였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마지막 권에 담긴 것은 프루스트 작품세계의 정점이자

그의 개인적인 고백이 담긴 결론, 그리고 시작이라 할 만하다.

66p-6

그래서 마지막 권인 <되찾은 시간>은 기쁨의 눈물들로 뒤범벅되어 있으며,

이는 단 한 알의 진주를 사기 위해 전 재산을 팔아치운 사람이 부르는 승전가다.

하루살이처럼 덧없는 모든 것, 찢어지는 듯한 고통, 세상의 모든 기쁨과 청춘과 명성 그리고 에로티시즘의

공허함이 창조자의 기쁨과 비교된다. 한 문장 한 문장 직조하며 매 페이지를 만지고 또 만지는 이 존재는 결코

전적으로 닿을 수 없는, 닿는 것이 영영 불가능한 무언가를 찾아가고 있을 뿐이다.

112p-3

그러나 그는 그러겠다고 결심했고, 더는 건강에 신경 쓰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죽음에 초연하게 되었다.

그렇게 무리를 했으니,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죽음이 찾아온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그는 침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머리맡 탁자 위에는 약병이 쓰러져 있고 거기서 흘러나온

액체가 작은 종잇조각 하나를 검게 물들였는데, 전날 밤 쓴 것이 분명한 그 메모에는 특유의 신경질적인 가는

글씨체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부차적인 등장인물일지 모르는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그 이름은 '포르슈빌'이었다.

130p-8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라는 부제가 붙은 얇은 책

그 속에서 혹한의 #포로수용소 한켠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기억속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끄집어낸 이야기

한 사람의 문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를 알게하는 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