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한 작가의 배움과 수련> 오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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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한 작가의 배움과 수련> 오선민
'오래전부터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문장을 내 식으로 바꾸면 이렇게 될 것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이 작품을 읽어 왔다.'
돌이켜보면 처음 책을 접하게 된 것이 2001년이니까 이 작품이 내 책상 위를 떠나지 않은 세월이 올해로
딱 14년이다. 프루스트가 이 작품을 집필한 기간에 맞먹는다. 하지만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그저 흰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자였을 뿐! 프루스트는 내게 외계인이나 다름없었다.
5p-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전체 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1권<스완네 집 쪽으로>가
출판된 것은 1913년이고, 제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는 전후인 1919년에 나왔다. 1920년에 제3권
<게르망트 쪽>이, 1921년에 제4권<소돔과 고모라>의 1부가, 1922년에 <소돔과 고모라>의 2부가 나왔다.
1923년에 나온 제5권 <갇힌 여인>부터는 작가 사후에 출간된 것으로, 1925년에는 제6권 <사라진 알베르틴>이, 1927년에는 제7권 <되찾은 시간>이 나왔다. 프루스트는 제1권과 제7권을 동시에 작업했고,
생트뵈브 반박 원고를 준비하면서 설계한 애초의 윤곽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40p-4
#잃어버린시간 은 어디에 있는가?
제목 그대로 마르셀의 과업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것이다.
시간이 무슨 분실물인가? 잃어버리고 찾을 수도 있다니. 혹시 마르셀은,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의 단편에
등장하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 처럼 완벽한 지각과 기억력을 가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르셀은 과거의
파편들을 완벽하게 그러모으려는 편집증 환자가 아니다. 단지 그는 우리가 시간을 '잃어버리면서' 산다는 것을
자각했고, 동시에 얼마든지 시간을 '되찾을'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이 모든 깨달음은 우연히, 순식간에, 동시적으로 일어났다.
49p-2
우리가 잃어버리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한 수많은 길들이 지금 이 길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다는 것은 지나쳐버렸던 길, 그 시간을 회고하고 그리워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오로지 현재의 이 길, 이 시간이지만,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수많은 삶의 가능성들이
그 현재 속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시간을 '되찾는'과정임을 뜻한다.
이와 같은 시간의 본질을 통찰할 때 비로소 우리는 현재를 보다 풍요롭게 만끽할 수 있으리라.
81p-11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대도시의 일상이 주는 우울과 피로를 해결하기 위해 근교나 지방,
심지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모든 TV채널은 가볼 만한 여행지를 앞다퉈 소개하고, 노인도 아줌마도 백수도
어디론가 떠날 수만 있다면 자유로운 인생을 사는 것처럼 생각되는 세상이다. 내 인생의 베스트 여행지 몇 곳쯤은
꼽을 수 있는 삶. 그것이 현대 도시인의 로망인 것이다. 프루스트는 백 년 전에 이미 이런 어리석은 휴가를
맹비난했었건만! 세상은 아직도 벨 에포크식 삶을 동경하는 중이다.
137p-1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자기 교양의 지평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판단한다.
스완의 교양은 갖가지 그리스.로마 고전에서 최신 인상파의 글림까지 망라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회화의 한 장면 위에 오데트를 놓고 보았던 것이다. 결국 그가 오데트에게 매료된 것은 그녀가
그의 예술 취미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사랑이란 게 그렇다.
상대를 사랑한다기보다는 상대에게 투영한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는 것.
159p-9
너무나 아파서 날마다 고통의 시간과 싸워야 했던 프루스트, 그야말로 진정 건강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았을까? 풍요 속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 한계와 절망만이 우리를 가르쳐 준다. 그런 의미에서,
실패한 사랑이야말로 마르셀에게는 사유와 배움의 교실이었다.
자신을 새롭게 바꾸고 낯선 삶을 살고자 하는 자들이여, 두려움 없이 사랑에 실패하시기를!
211p-15
글쓰기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생을 마감하는 작가, 바로 그런 작가에 의해서 작품은 비로소 영생을 얻는다.
마르셀은 베르고트를 통해 죽을 때까지 글을 고치면서 사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삶임을,
최후까지 글쓰기에 대해 배우는 존재야말로 작가임을 알 수 있었다.
251p-6
마르셀에게 '되찾은 시간', 즉 예술의 창조란 전혀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뱅퇴유처럼 번민하고, 엘스티르처럼 죽도록 습작하고, 베르고트처럼 죽는 그 순간까지도 뭔가 배우는 삶이
예술가의 삶, 즉 '되찾은 시간'이다. 이런 부단한 정진만이 허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않게 하고, 언제나 신선한 공기를 맛보면서 살게 한다.
예술의 창조란 그 자체로 예술가의 양생법이다.
265p-1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위해 사전지식을 얻기위해 읽은 책,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격언이 프루스트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이제 조금 프루스트를 읽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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