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를 읽다: 겸하여 나의 추억과 생각을 담아서> 정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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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를 읽다: 겸하여 나의 추억과 생각을 담아서> 정명환
나는 평생 일종의 부끄러움을 남몰래 간직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명색 불문학자, 그것도 현대불문학 전공자로 통해온 내가 프루스트 <잃었던 때를 찾아서>를 통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불문학개론' 같은 제목의 강의를 할 때는, 단지 사화집에 실린 몇몇 에피소드만
이용하면서도, 그 대작을 익히 알고 있는 듯한 행세를 해왔으니 뻔뻔하기도 했다.
6p-1
프루스트를 읽음으로써 독자가 얻는 효험의 하나는 독자 역시 자신의 사라진 과거를 재생시키는
계기를 얻게 된다는 것이리라. 아직 첫 부분을 읽고 있지만 내 머리에도 벌써 여러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그중의 한 가지를 적어둔다.
15p-2
그렇다면 이 자기 멸시의 연속을 끊기 위해서 그만 읽을까?
아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려고 한다.
그러다가 혹시 오물을 모두 건져낸 연못처럼 마음이 깨끗해질지도 모를 테니까.
그리고 그것을 나의 '되찾은 시간'으로 삼을 수도 있을 법하니까.
23p-19
요컨대, 나는 프루스트를 읽으면서 자주 느끼는 한계를 이 대목에서도 또 느끼게 된다.
그는 날카로운 감성과 통찰력을 갖추고 있지만, 상류사회의 환경과 습성에 갖혀 있기 때문에,
타자와 공생 관계도 모르고 적대 관계로 몰린 일도 없기 때문에, 그 경험과 관점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이기주의자(이 호칭이 지나치다면 자기중심주의자)이다.
110p-13
이렇듯 긍적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현실에 의해서 부단히 파괴되고 또 생성되고 하는 기억의 영상들 중에서,
아무리 세찬 풍상에도 꿈쩍하지 않는 반석처럼, 시간과 현실의 마모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영상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는 그런 영상을 어떻게 찾아내고 어떻게 보전할 수 있는가? 그 발견과 보전의 가능성을 믿고
과거를 탐색하는 이야기가 이 대하소설의 주된 테마일 터이다.
158p-4
지금까지의 나의 인상으로는, 삶과 세계에 대한 윤리적, 실존적 질문의 제기와 그 대답을 위한 치열한 드라마의
제시를 프루스트에게 주문할 것이 아니다. 그 점에서는 그의 글은 환멸적이다. 그 대신 인간에게 숨어 있는
어떤 성질들을 들추어내는 섬세한 감각과 그 표현을 위한 희한한 스타일은 특출한 것이다.
이러한 내면적 리얼리즘의 언어를 높이 사면서 읽는 것이 프루스트 읽기의 한 방법이다.
233p-7
프루스트의 이 엄청난 소설에 대한 나의 불평이 있다면,
그것은 이 사랑의 국면을 위시하여 모든 면에서 대타관계 속에서 자신에 대한 사회적 윤리적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의 소설을 완독하고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로 달려간 것은 '우리의 이기주의'와
'타인속의 우리'가 갈등하는 '우리의 실존적 드라마'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말년에도 정온한 글보다는 그런 격동적인 글을 선호하다니 ······ 수양이 덜 된 탓이리라.
318p-2
예술의 덕분으로 우리는 자신의 세계라는 단 하나의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세계를 볼 수가 있고,
독창적인 예술가가 많이 존재하면, 그만큼 더 많은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
이들의 세계는, 무한의 공간에서 돌고 있는 별들의 세계보다도 한결 더 서로 다른 세계이며,
그 빛이 나온 근원이 렘브란트라고 불리건 페르메이르라고 불리건 간에, 그것이 사라지고 몇 세기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특별한 빛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85p-22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읽어야 하는가?'
나보다 먼저 치열한 자기반성으로 "5년여에 갈친 줄기찬 독서 기록"을 남긴 90대 노교수의 책을 통해
프루스트 읽기의 한가지 방법을 배운다. 위대한 작가의 그늘에 가려 서지 말고 자기만의 생각으로 비판적으로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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