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은 시간 1> 마르셀 프루스트
<되찾은 시간 1> 마르셀 프루스트
하루 종일 두 번의 산책을 하는 동안 또는 소나기가 내리는 동안 잠시 낮잠 자는 장소로밖에 보이지 않는 조금은 지나치게 전원풍이 처소에서, 각각의 객실들은 녹음으로 뒤덮인 정자인 양, 어떤 방의 벽지에는 정원의 장미가, 또 어떤 방의 벽지에는 나무의 새들이 - 어쨌든 다른 것들로 부터 떨어진 - 우리곁에 와서 머무는 듣했다. 그것은 장미꽃이나 새가 정말 살아 있다면 장미꽃은 꺾고, 새는 잡아서 새장에 넣고 길들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간격을 두고 그려진, 오늘날의 거창한 실내 장식 개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은빛 배경 위로 온갖 노르망디의 사과나무들이 일본화의 기법으로 그 윤곽을 드러내며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에 환각을 일으키는 그런 오래된 벽지였다.
19p-1
그 결과 만찬에 참석한 손님들에 대해 관찰할 수 있는 요소들을 모두 한데 모아 내가 스케치한 선의 데생이 심리학
법칙의 총체를 드러냈고, 거기서 손님 자신이 대화에서 보여 주었던 원래의 흥미로운 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그린 초상화의 가치를 삭제할까?
만일 회화 분야에서 한 초상화가 빛과 질감과 움직임에 관련된 몇몇 진리를 규명해 준다면,
그것이 같은 인물을 그렸지만 첫 번째 초상화에서는 생략된 수많은 디테일들을 상세히 묘사하여 그 인물과
전혀 닮지 않은 초상화를 그렸다고 해서 그 두 번째 초상화를 반드시 열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료와 역사적인 면에서 중요한 것이 반드시 예술의 진리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60p-23
간단히 말해 사교계 인사들은 이제 샤를뤼스 씨에 대해 더 이상 열광하지 않았다.
그의 흔치 않은 지적 능력을 지나치게 깊이 이해해서가 아니라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를 '전쟁 전' 인간이나 유행에 뒤진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까닭은 가치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바로 유행의 기준에 따라 가치의 등급을 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세대에 존재했던 탁월한 사람의 가치를 깊이
다루거나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새로운 세대의 표지가 나타나면 전 세대의 것보다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들 모두를 일괄적으로 비난해야 한다.
152p-3
비록 그것이 사실에 입각한 것이라 할지라도 샤를뤼스 씨가 전쟁을 봉건주의적 시각이나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의 시각에서 판단하면서 했던 고찰만큼이나 유치했다. 하지만 그는 보다 정확한 지적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놀라운 사실은 신문을 통해서만 전쟁에 관련된 사람들을 판단하는 일반 대중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는 거지,"
191p-16
생루의 비밀은 어쩌면 이제는 내게 낮선 것이 되어버린 알베르틴의 삶에대한 비밀보다 더 많은 슬픔을 자아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삶이 생루의 삶처럼 그토록 짧았다는 사실은 나의 마음을 달래 주지 못했다.
알베르틴과 생루는 자주 내 건강을 걱정하면서 "병약한 당신"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죽은 자들은 바로 그들이며, 하나는 참호 앞에서 하나는 시냇물에 떠다니는 그들의 마지막 이미지를,
나는 사실 그렇게 짧은 간격에 의해 분리된 그들의 첫 번째 이미지와 비교할 수 있었다.
298p-8
<되찾은 시간 1> 권이 끝났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행의 종착지가 가까워진다.
프루스트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간과 인간의 삶 그리고 예술을 이야기 하고자 했다.
잃어버린 시간에서 조금씩 되찾아 가는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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