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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용담유사> 도올 김용옥

<용담유사> 도올 김용옥

<용담유사> 도올 김용옥

#수운 이 지은 #하느님 노래 그리고 뒷날개 "이제 우리는 조선의 광맥을 찾았다!"

#동학#주요경전 임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책 <용담유사> 라는 #한글경전 을 20세기 한국말로 번역했다.

살아있는 수운의 삶과 언어속으로 들어가는 이책은 동학이해의 개벽적 사건이라 강조한다.

서언(序言) - #존재와몸 : 동학을 이해하는 한 단어

몸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왜곡되었는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외래적 가치에 의하여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언어를 내가 만들지 않았다. 그냔 주어진 대로 익혔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익힌 언어의

개념적 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아 온 것이다. 내 세상이 아니라 나의 언어의 세상인 것이다.

11p-14

우리나라에서 수운이 아직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첫째 우리가 근대적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언어 속에 갇혀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 언어의 심원이라 할 수 있는 서양의 모든 학문체계, 철학사상이

아직도 신학의 시녀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없이는 우주를 설명해서는 아니 되고, 본질 없이 실존을

생각할 수 없고, 본체 없이 현상을 해명해서는 아니 되고, 신비 없이 의식을 해체할 수 없는 것이다.

서양철학은 알고 보면 기독교신학의 정교한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20p-6

제1장 #용담가

수운이 최초의 하느님해후의 느낌을 한글로 적었다는 것, 즉 무극대도의 출발이 한글가사였다는 것,

동학의 시작이 한글노래였다는 것은 조선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가 한문으로 <포덕문>을 쓰게 되는 것은 1년 3개월이나 지난 후의 사건이다.

그러니까 이 <용담가>의 생생한 느낌은 많이 희석되고 개념화되고 언어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용담가>에 담긴 한글가사의 느낌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다.

비극적인 삶의 역정이 무극대도 수용을 계기로 환희로 전환되는 그 감격이 여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60p-11

제2장 #안심가

수운은 1860년 4월 5일, 용담에서 득도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득도를 대외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것을

내면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즉 하느님과의 해후, 대면하여 주고받은 언어들을 검증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1년 2개월이나 된다. 그리하여 내면적 확실성을 획득함에 따라

1861년 6월 초부터 용담의 포문을 열었다.

82p-1

아~ 가련하도다. 가련하도다! 우리나라 돌아가는 형국이 진실로 가련한 운세로다. 앞 세상 임진년은 몇 해

전이었던가? 240년 전 아니었드냐? 그런데 4갑자가 돈 이시대에도 온 세상이 제국주의의 침공으로 들끓고 콜레라와

같은 괴질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한 운세야말로 세상이 다시개벽 되는 징조가 아니겠는가?

111p-3

제3장 #교훈가

애달프다! 너희들은 출중한 현자가 되는 것을 꿈꾸지는 않는다 해도, 인간 이하의 말종이 되고,

도덕이 없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지어낸 재앙이라 할지라도 나의 가슴에는 한이 맺히는 일이로다.

운세를 아무리 좋게 타고 태어난다. 할지라도, 실존의 노력으로 닦지 아니하면 도덕이 될 수 없다.

너희들은 무슨 팔자가 그렇게 좋다고 노력하지 않고 거저 먹으려 한단 말인가?

172p-10

나 역시도 이 글을 너희에게 전한다마는 아무런 효험(이것이 곧 "신험"이다)이 없게 되면 너희들 신수가 가련할

뿐이요, 이 나의 간곡한 언어들이 다 헛말이 되어버린다면 그 또한 나의 수치로다.

아~ 너희가 진실로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비극적 종말까지도 생각 아니할 수는 없는 것이다.

179p-4

제4장 #도수사

수운은 역시 또 고독했다. 그 새로운 풍요로운 조건 속에서도, 이색적인 풍광의 참신한 기운을 쐬어가며 수운은

또다시 붓을 든다. <교훈가>가 완성된 보름 후에 다시 남원 광한루 아랫동네에서 쓴 글이 바로 이 <도수사>이다.

180p-12

제5장 #권학가

지금 우리나라에 해마다 괴질이 돌고 있는데 이나라의 인물이 상해당하고 있는 형편이 아니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혁명의 기운을 퍼뜨려 물약자효케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제작기 이 세상을 편답주류

하다가서 속이 깊은 인(仁)하 사람을 만나거든 시운시변(時運時變) (이 시대의 운세가 변하고 있다는 혁명사상)을 의논하라! 백년의 운세를 말할 수 있는 원시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 글을 주고 같이 일을 도모할

혁명의 동지로서 결의하라! 혁명동지의 핵심적 인품은 신(信) 한 글자에 담겨있다.

서로 신뢰하고 신망할 수 있는 붕우를 만들라!

236p-2

하느님의 뜻과 사람의 마음이 서로 상통한다는 것을 네가 지금은 모른다 해도 언젠가는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하느님이 다시 개벽에 뜻을 두게 되면, 금수같은 세상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알아낼 것이다.

나는 신선이다. 언제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너 또한 신선의 연분이 있는 사람이니 나를 아니 잊고 다시 찾아올까?

261p-10

제7장 #도덕가

수운의 문장 중에서 수운의 인간관과 신관이 가장 명료하고 간결하게 표현된 노래가 바로 이 <도덕가>이다.

<도덕가>를 통해서 우리는 수운의 사상적 변천을 읽을 수 있으며, 또 그가 얼마나 사태의 변화에 따라 기민하게

대처하는 말랑말랑한 사상가인지를 알 수가 있다. 레퍼런스도 없이 붓 한 자루로써 자기가 처한 실존적 문제상황을

타개해나가는 그의 지력고 필력과 뚝심은 조선의 사상가, 그 누구도 필적할 수 없다.

268p-19

제8장 #흥비가

수운은 1863년 12월 10일 새벽 고요한 용담골짜기에서 적막을 깨는 어사출또의 명령과 함께 서울에서

내려온 선전관 정운구에 의하여 체포된다. 그리고 다음해 3월 10일 대구 남문 앞 개울가에있는 관덕당 뜰에서

효수되었다. 그러니까 이 <흥비가>는 그의 정상적 삶이 끝나기 4개월 전에 마지막 투혼을 불살라 지은 것이다.

288p-13

#동학선언문 - 동학농민혁명국가기념일 3주년을 맞이하여

그 보편적 조직을 관장한 사람은 제2대 선생님 해월 최시형, 1827~1898이었습니다.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 어린이를 때리는 것은 하느님을 때리는 것이다. 하느님은 매맞기를 싫어하신단다."

"베를 누가 짜고 있느냐?" "제 며느리가 짜고 있습니다." "아니다!하느님께서 짜고 계시나니라."

"일체의 사람을 하느님으로 대하라. 손님이 오거든 하느님이 오셨다 하라."

"타인의 시비를 말하지 말라. 이는 천주를 시비함이라."

"네가 먹는 밥 한 숟가락 그것이 곧 하느님이니라. 온 생명의 근원이니라."

"제삿상은 청수 한 그릇으로 족하니라. 청수 한 그릇이야 말로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326p-9

동학과 #21세기혁명

수운은 "나의 사상은 성(誠), 경(敬), 신(信), 세글자로 요약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성(誠)은 대자연의 성실한 운행이다. 경(敬)은 인간의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말한다.

신(信)은 자연의 성에 대하여 인간이 경을 지닐 때 나타나는 신험한 덕성들이다.

368p-19

미국의 독립전쟁과 러시아 혁명의 사이에 동학혁명이 있었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마지막 비명이라 생각했던 동학

그 동학을 도올 김용옥은 "이제 우리는 조선의 광맥을 찾았다!"고 이야기한다.

<용담유사>를 읽으면서 동학의 큰 뜻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