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chitecture

'깃듦'의 건축

'깃듦'의 건축 

 

 

솔토건축 건축가 조남호

 

우리 시대 주거에 대한 성찰

 

아파트 공화국

 

"한국의 아파트는 한결같이 고층화와 고급화, 그리고 첨단 감시장치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발레리 줄레조 (아파트 공화국의 저자)

 

두개의 평가

 

몰개성적 공간과 단지라는 형태로 나타난 패쇄적 공동체

 

삶의 질의 혁신 한국의 주택청약 제도와 유럽의 공공주택 제도

 

단독주택시장의 양극화

 

아파트를 제외한 우리의 주거 시장은 양극단만 존재한다. 한편은 소위 집장사들에 의해 지어지는 대중들을 위한 집들은 재료도 제각각이고 내부 구성은 방의 갯 수만 중요할 뿐, 품격은 사라진지 오래다. 또 한편은 건축가들의 작업은 설계비보다도 더 부담스러운 공사비로 인해 1%미만의 사람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 건축가들은 비용과 공간의 잉여를 기회로 생각의 다름을 표현한다. 가치의 평가는 건축계만의 일이 되고, 활기찬 도시를 만드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

 

보편적 집짓기

 

오랜 전통에서 진화된 재료와 구법이 이루는 풍경 마을 풍경에 보템이 되는 건강한 도시주택

 

물론 맞춤복만 좋은 옷이 아닌 것처럼 좋은 기성복의 비중이 훨씬 더 크게 마련이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금언처럼, 평범한 집이 도시 풍경을 만든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어느곳을 가던 과거로부터 이어온 그지역의 보편적 집짓기 방식이 만든 고유의 풍경이 있다. 많은 건축가들이 참여한 판교단독주택지보다 북촌 도시한옥마을이 월씬 풍부함을 주는 이유이다. 북촌의 도시한옥도 '건축가 없는 건축' 소위 집장사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변화의징후

 

영원할 것 같던 아파트의 신화에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산업사회의 고도화는 생산을 향상시키는데 더 이상의 공간과 고용을 필요로 하지 않음으로서 아파트 시장의 주요수요층인 중산층을 감소시킨다. 중산층의 위축과 더불어 인구의 감소는 장기적으로 개발 잠재력 저하 의 원인이 된다. 한편에서는 도시외곽의 건설회사 소유의 땅들이 소진되어 뉴타운 같은 도시재개발로 점차 대상지를 옮겨갔지만 과거와 같은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아파트 시장은 그 복잡한 과정과 이해관계로 인해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게 되었다.

 

기실 단독주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단순히 아파트의 몰락에서 기인된 것만은 아니다. 비교적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삶의 형식인 집에대한 자의식의 성장 을 들 수 있다. 단독주택을 갖는 일은 단순히 경제력을 의미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형상을 담는 집에서 살고자하는 의지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의 영역이다. 최근 땅콩집열풍은 주거 유형에 대한 다양한 욕구가 한 쪽에서 분출된 예라고 할 수 있다.

 

보편의 실험

 

건축가 없는 건축

 

건축은 기술의 집합체 이고 기술은 산업에 고정화 되어지는 것이, 어디까지나 목수의 작업처럼 개인의 감성과 경험 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것이다.

 

깃듦의 건축

 

"나는 서서 살다시피 한다. 그림을 서서 그리기 때문이다. 파리에 가서 3~4년 동안에 이버릇이 생겨서 돌아 와서도 서서 일을 한다. 그래서 지금 나에겐 앉아 있는 것보다는 걸상에 걸터앉아  있는 것이 편하고 걸터앉아 있는 것보다는 서있는 것이 편할 정도다. 서서 일하다가 쉴때는 눕는 버릇이 생겼다. 주저앉거나 걸상에 안는 것보다는 눕는것이 편하고 피로가 풀리기 때문이다. ...... 서서 사는 내 생활이 나에겐 가장 잘 맞는 방법인 것 같아서 앞으로 집을 짓게 되면 서서 살기에 알맞은 집을 지을까 한다. 칸칸이 막는 집이 아니고 큰 방 하나로 - 뜰도 그냥 뜰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뜰, 뜰에서 식사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하고 그리고 낮잠도 잘 수 있는 그러한 정원을 만들고 싶다.

 

서양화가 김환기, <자연스러운 생활> 1963년 경

 

거주의 본질

 

<우리는 거주할 줄 알아야 집을 건축할 수 있으며 집을 지어야 그 속에 거주할 수 있다.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거주한다는 것은 장소에 산다는 것이고, 장소를 뛰어 넘을 때 거주는 소멸된다. 잘 알려진 친밀한 것과 낯설고 이상하며 두려운것 사이에 집의 경계가 있다.

집은 본래 사람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살아가다가 죽는 장소이다.

 

해체와 분화 근대화와 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집은 해체되고 분열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집안에서 태어나고 죽지않고, 병원에서 태어나고 죽는다. 사람들은 더 이상 동네에서 살지 않고 주택 상품에서 산다. 거주 할 줄 알아야 건축할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건축 할 수 없게 되었다.

 

현대인은 육체적으로 집이 있어도 정신적으로 집없음 (homelessness)을 경험하고 있다. 해체된 거주는 거주자체를 소멸시켰다기 보다는 거주의 경계망을 모호하게 하고 거주의 새로운 의미망을 확장시켰다. 수 많은 방의 문화와 사이버 공간의 출현이 그것이다.

 

현대인들에게 거주한다는 것(dwelling)은 상품화된 거주 공간(집)들 사이에서 이동과 정착을 반복하는 낮선 삶을 의미한다.

진정한 노마디즘(nomadism)은 정착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임과 동시에, 새로운 환경에 이주민이 아닌 자족적으로 거주하는 유목민의 의미일 것이다.

 

'Architec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캐나다 목조건축 세미나   (0) 2012.05.17
종묘(宗廟)   (0) 2012.03.03
목조주택 이야기  (0) 2012.02.25
ECC (Ehwa Campus Complex)  (0) 2010.10.15
2010년도 건설기술인의날 기념 시공사례 세미나  (0) 2010.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