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남자> 조르주 페렉
<잠자는 남자> 조르주 페렉
조르주 페렉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다.
작품활동 기간은 15년 남짓이지만, 소설과 시, 희곡, 시나리오, 에세이, 미술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시도했다. 1982년 4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무렵에는 이미 20세기 유럽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시대를 앞서가는 도전적인 실험정신과 탁월한 언어감각, 방대한 지식,
풍부한 이야기, 섬세한 감수성으로 종합적 문학세계를 구축한 대작가로 인정받았다.
5p-2
이런 공허한 나날들이 있었고, 가마솥 안에 있는 것처럼, 화덕 속에 있는 것처럼, 네 방에는 열기가 있었고, 네 양말 여섯 개가, 물컹거리는 상어들처럼, 잠든 고래들 처럼, 분홍색 플라스틱 대야 안에 있었다. 네 기상 시간에 맞춰 울리지 않았던, 울리기 않는, 울리지 않을 그 자명종. 너의 장의자 위에, 네 곁에다가, 펼쳐진 책을 내려 놓는다. 너는 몸을 펴고 길게 눕는다. 모든 것이 둔탁함, 윙윙거림, 무기력이다. 너는 너 자신을 미끄러지게 내버려둔다.
너는 잠 속으로 빠져든다.
26p-25
그 무엇도 원하지 않기, 기다릴 것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기. 늑장 부리기, 잠자기. 인파에, 거리에 휩쓸리게끔 너 자신을 방치하기. 도랑을, 철책을, 배를 따라 물가를 좇기. 강둑을 따라 걷기, 벽에 찰싹 붙어 지나가기. 네 시간을 허비하기. 온각 계획으로부터, 모든 성급함으로 부터 벗어나기. 욕망 없이, 원한 없이, 저항 없이 존재하기.
45p-12
그렇지 않다. 너는 더이상, 이 세계의, 역사가 더는 손길을 내뻗지 못하는 세계의,
비가 내리는 것을 더는 느끼지 못하는 밤이 오는 것도 더는 느끼지 못하는, 익명의 지배자가 아니다.
너는 이제 더이상,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도, 맑은 사람도, 투명한 사람도 아니다. 너는 공포를 느낀다, 너는 기다린다.
너는, 클리시 광장에서, 내리는 비가 멎기를 기다린다.
122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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