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짐승> 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모니카 마론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너무나 많은 젊음, 너무나 많은 시작이 있었으므로 끝이란 것은 좀처럼 가늠이 안 되는 것이었고
또 아름답게만 생각되었다. 서서히 몰락해가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것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금 나는 백 살이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다. 어쩌면 이제 겨우 아흔 살일 수도 있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마 백 살이 맞을 것이다. 계좌를 개설해둔 은행 이외에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9p-1
프란츠가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뼈대를 보고 아름다운 동물이라고 말했던 그날 아침 그를 한순간도 위안거리나 찾는 종말론자로 여기지 않았던 것은 딱히 규정할 수 없는 사투리가 섞인 부드러운 프란츠의 목소리, 그리고 그의
담회색 눈 속에 나타나는 방향없는 진지함 때문이었다. 브라키오사우루스 앞에서 드리는 나의 아침 예배 때문에
나를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 다음 내가 대답했다. "그렇죠, 아름다운 동물이죠."
23p-8
프란츠에 대한 내 감정의 억제할 수 없는 성질이 공룡성에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문명적 규범을 무시하면서 그렇게 사랑했던 것이 내 안에 있는 공룡성,
원시적인 어떤 것, 격세유전의 폭력성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던 것이다.
언어를 필요로 하는 어떤 것도 프란츠에 대한 내 사랑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없었다.
107p-23
노년에서 좋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전혀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노년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은 모두 어리석은 말이거나 거짓이다. 예를 들어 생생한 몸이 부패하지 않고는 현명해
질 수 없다는 듯 노년의 지혜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그렇다. 노인은 천천히 청력을 잃고 시력을 잃고 천천히
경직되고 멍청해 진다. 이제는 누구와도 교제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것에 대해
증명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멍청해졌다고 생각한다. 노년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할 수 있다면,
다만 두 가지 관점에서 노년이 죽음에 대한 준비로서 쓸모가 있다는 것뿐이다.
118p-22
나는 이 시간 속에서 죽고 싶었다. 프란츠도 비슷한 것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가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이야기를 했다.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를 사랑의 죄인들을 위한 지옥을 통과해 데려갈 때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고통 때문에 단테는 정신을 잃는다. 그들은 영겁의 세월을 거친 돌풍에 쫓기고 부딪히며
지옥을 통해 날아다녀야 하지. 프란츠가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놓아주지 않아. 지옥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아. 아버지가 루치에 빙클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서
두사람 이야기를 내게 했었어. 짐승들은 지옥에 가지 않아. 내가 말했다.
170p-18
나는 간신히 몇 걸음을 옮겨 식육식물들 사이의 내 자리로 간다.
낯선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며 식물들이 잎새를 희롱한다. 이파리들 사이에 눈들이 반짝거린다.
여기저기에서 나를 지켜보는 눈들. 그것은 짐승들의 눈이다. 그들이 식육식물들 사이에 앉아 내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지키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짐승들이 온다. 크고 작은 짐승들이 조용히 다른 짐승들 사이에 앉는다.
나는 그들 한가운데 누워 있고 그들이 무섭지 않다. 나는 그들 가운데 한 마리 짐승이다.
짐승인 나의 몸을 휘감는 긴 팔과 뭉툭한 코를 가진 갈색 털의 원숭이다. 그렇게 나는 누워 있다.
195p-7
해설 - '기이한 시대'의 삶과 사랑
1941년 2차 세계대전의 포화속에 베를린에서 태어나 1951년 동베를린으로 이주 1976년 동독에서 전업작가로 활동
1988년 서독으로 이주,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책 <슬픈 짐승>은 1996년 쓰여진다.
독일 현대사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삶의 단면을 이해하게 해준 소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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