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죽어야 할 날’을 준비하다
▶ 1911년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이 그린 매천 황현의 초상화. 개인 소장.
[번역문]
융희 4년(1910) 7월 일본이 마침내 대한제국을 병합하였다. 8월에 황현이 그 소식을 듣고 비통해하여 음식을 먹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절명시’ 4수를 짓고, 자제들에게 이러한 유서를 남겼다.
“나는 죽어야 할 의리가 없다. 다만 국가에서 선비를 길러온 지 5백 년이 되었는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국난에 죽는 자가 없다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위로는 하늘로부터 타고난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평소에 읽은 글을 저버리지 않으며 영원히 잠들어 버린다면 참으로 통쾌함을 느끼리라. 그러니 너희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라.”
이 글을 다 쓰고 바로 독약을 마셨는데, 다음 날에야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생 황원이 달려가 형을 보고 할 말이 있는지 묻자, 황현이 말하기를,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다만 내가 써놓은 글을 보면 알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죽는 일이란 쉽지 않은가 보다. 독약을 마실 때 세 번이나 대었다 떼었다 하였으니, 내가 이처럼 어리석었단 말인가.” 하였다. 얼마 있다 운명하니 향년 56세였다.
[원문]
隆煕四年七月. 日本遂倂韓. 八月. 玹聞之悲痛. 不能飮食. 一夕作絶命詩四章. 又爲遺子弟書. 曰吾無可死之義. 但國家養士五百年. 國亡之日. 無一人死難者. 寧不痛哉. 吾上不負皇天秉彝之懿. 下不負平日所讀之書. 冥然長寢. 良覺痛快. 汝曹勿過悲. 書訖引毒藥下之. 平明. 家人始覺. 弟瑗奔視之. 問有所言. 玹曰吾何言. 但可視吾所書也. 因笑曰. 死其不易乎. 當飮藥時. 離口者三. 吾乃如此. 其痴乎. 俄而氣絶. 年五十六.
- 김택영(金澤榮, 1850~1927), 『소호당집(韶濩堂集)』 권9, 「황현의 전기[黃玹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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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운찬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장
- 경향신문 편집국 문화부장과 문화에디터, 베이징특파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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