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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주도하여 만든 소박한 관광도시, 유후인 1

주민이 주도하여 만든 소박한 관광도시, 유후인 1

유후인 역 앞에서 설치된 유후인 안내도
유후다케산과 유후인전경
 
 
관광명물로 자리잡고 있는 유후인 역사
 
유후인의 작은 상가들과 관광객들

 

일본 큐슈 오이타현의 중앙부에 위치한 유후인은 산속에 둘러싸인 인구 1만여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이지만, 매년 약 400만 명의 외지 관광객이 찾아오는 유명 온천 관광지다. 청정한 자연 환경, 양질의 풍부한 온천수, 깨끗한 온천욕 시설을 갖춘 작은 규모의 여관과 민박집들, 전통 형태 그대로의 거리와 가옥들, 그 속에 자리잡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세련된 상점들이 만들어내는 소박하고 정감어린 분위기가 교통이 불편한 산골의 작은 도시 유후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하는 매력이다. .

유후인과 벳푸의 차이점


온천 관광지로서 유후인은 같은 오이타현에 있는 벳푸와 여러 측면에서 대비된다. 벳푸는 20세기 초반부터 일찍이 온천 관광지로 개발된 곳으로 한때 방문객 수가 1천만 명이 넘는 큐슈 최대의 온천 관광도시였다. 벳푸의 온천 산업은 1950~1960년대 일본의 고도 성장기 때 온천 관광이 대중화하면서 급속히 발전하였는데, 그 당시 온천 관광객들의 대부분은 남성 단체 관광객들이었고, 이들의 관광 행태는 온천과 결합된 환락 관광이었다. 또한 벳푸 관광산업 성장을 주도한 것도 대규모 숙박업소와 유흥업소를 건설한 외부 자본들이었다. 이에 비해 유후인은 1950년대만 해도 농업을 주로 하는 작은 산골 마을에 불과했다. 풍부한 수량과 양질의 온천수가 분출되었지만, 불편한 교통으로 인하여 일본에서조차 별로 알려지지 못했다. 그러나 유후인은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벳푸와는 차별화된 방향으로 온천 관광 산업을 발전시켰다. 즉, 개발에 훼손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환경과 함께, 환락 온천 관광과 대비되는 휴양 온천 관광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남성 단체 관광객 대신 여성과 개인, 가족 단위 관광객 유치에 주력했다. 개발 방식도 외부 자본 주도의 대규모 개발 대신,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된 소규모 개발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유후인의 차별화 전략은 이후 일본인들의 관광 행태가 남성 단체 관광 중심에서 개인과 가족 단위 관광으로 바뀌고, 인구의 고령화 현상에 따라 휴양 수요가 증가하는 시대적 상황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지금 벳푸가 싸구려 관광지라는 이미지 때문에 관광 산업이 고전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유후인은 일본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온천지가 되었고, 최근에는 한국이나 중국 등 동아시아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다.

내발적 발전의 성공 사례


유후인과 비슷한 자연 환경을 가진 일본의 농산어촌 지역들이 대부분 지역 경제의 쇠퇴, 인구감소와 노령화의 문제를 안고 있는 데 비해, 유후인은 관광 산업의 발전을 통해 지역 경제를 진흥시키고 인구 감소 문제를 극복한 예외적 경우에 해당한다. 또 공장 유치나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하여 성장을 도모했던 지역들이 생태환경 훼손과 지역 공동체 파괴 등 여러 가지 성장 후유증을 앓고 있는데 비해, 유후인의 경우는 자연 환경을 잘 보존하면서도 지역경제 성장과 주민소득 증가를 다 함께 달성한 흔치 않은 성공 사례다.

유후인이 주민 주도의 내발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이 지역에 댐을 건설하려는 계획에 대해 주민들이 반대하면서부터였다. 1952년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유후인 분지에 댐 계획이 공표되었다. 댐이 완공되면 도시 전체가 몽땅 수몰될 처지였다. 행정당국이나 일부 지역 유지들은 댐 건설에 찬성했지만 유후인 청년단체를 중심으로 한 많은 주민들이 댐 건설 반대 운동에 동참했다. 주민들의 반대와 기술적·경제적 문제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댐 건설은 중단되었다. 당시 댐 건설 반대운동의 지도자이자 청년단체 대표였던 이와오 히데가스는 1955년 막 합병되었던 유후인 정 지방선거에서 초대 정장(町長)에 당선되었다. 그는 온천, 농림업, 자연, 이 세 가지를 통합하는 주민 주체의 민주적 마을만들기를 지방행정의 기본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건전한 휴양온천지로 유후인을 가꾸는 데 전념했다. 그는 1955년부터 1974년까지 무려 5기를 연임하면서 유후인을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되는 조용하고 소박한, 그러면서도 주민 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온천 관광지로 발전시키려는 다양한 정책들을 주민들과 합심하여 추진했다.

 

유후인의 작은 상가들과 관광객들

아름다운 경관과 소박함이 돋보이는 유후인
 
유후인 긴린코 호수와 그 옆의 샤갈 미술관
 
유후인 전통 료칸의 야외 온천장

장소 마케팅을 위한 노력

유후인이 벳푸와는 차별되지만 어쨌든 온천 관광산업을 지역의 주력 산업으로 육성코자 했기 때문에, 외부에 대한 지역의 홍보는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유후인은 깨끗한 자연과 문화를 지역의 대표 이미지로 잡고, 이러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주민 주도의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를 개최하였다. 유후인 자연의 청정함을 알리기 위한 '반딧불 채집 행사', 지역의 경관 자원인 목초지 유지와 도농 교류 차원에서 도시민에게 소 한 마리씩 사달라고 호소한 '소 한 마리 운동', 이 운동에 동참한 도시인에 대한 보답과 지역 홍보를 겸한 '소고기 먹고 소리지르기 대회', 영화관 하나 없는 작은 도시에서 개최한 '유후인 영화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외에도 음악제, 음식문화제, 건강마라톤 등 각 계절별로 대상을 달리하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일본의 유명 문화인들을 유후인에 초대하고, 이들을 통해 유후인을 널리 알리는 전략도 사용했다. 한 예로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유후인을 배경으로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그의 대표작들을 만들었다. 이같은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장소 마케팅 전략이 성공을 거두면서 유후인은 고급 휴양 생태 문화 관광지라는 이미지를 갖추게 되었고, 관광객도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대규모 개발 및 외부 자본의 침투 저지

유후인이 좋은 이미지로 외부에 알려지고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이에 비례하여 외부 자본의 관심도 증가하였다. 유후인에 투자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외부 자본들이 몰려들면서 유후인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유후인 주민들의 일각에서는 외부 자본을 받아들여 개발을 촉진하여 유후인 발전을 앞당기자고 주장하였고, 다른 쪽의 주민들은 이에 반대하였다. 이러한 입장 차이에 따른 갈등 발생의 대표적인 사례가 1970년 유후인 골프장 건설시도였다. 외부 자본이 시도한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유후인의 자연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여 골프장 건설을 막았다. 이후에도 외부 자본이 들어와 유후인에 대형 건축물이나 대형 상업시설을 지으려는 여러 차례 시도가 있었고, 그때마다 주민들 내부에서 찬반 양론이 맞섰지만, 민주적 토론 과정을 거쳐 반대 입장이 관철되었다. 그렇지만 외부 자본을 반대만 해서도 될 일은 아니었다. 골프장 건설 반대 모임이 모태가 되어 "내일의 유후인을 생각하는 모임"이 발족한다. 이 모임에서는 개발을 반대하고 자연을 보전한다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유후인이 가진 자연과 문화를 적극 활용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들의 노력은 이후 유후인에서 개발과 보존의 조화를 꾀한 "자연환경보호 조례(1972년)" "모텔류 시설 등 건축규제 조례(1983년)", "주택환경보전 조례(1984년)" 등의 제정으로 이어진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거품 경제 활황 속에서 일본 전역에 리조트 개발 붐이 일었다. 마침 나카소네 정부가 리조트법을 만들어 리조트 개발에 각종 혜택을 주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당시 유후인에 리조트 개발 신청 수가 3,600여 개로 도시 전체 세대수에 육박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후인은 이러한 개발 붐에 편승하지 않고, 오히려 개발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갔다. 외부 자본에 의한 난개발을 막기 위해 "윤기 있는 마을만들기 조례(1990년)"를 제정하여, 건물을 지을 경우 자연환경과 주변과 조화될 수 있도록 건물의 높이나 색채를 규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유후인 관광의 명소들

유후인 관광의 중심은 역시 온천이다. 유후인에는 우리나라나 인근 벳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식 시설을 갖춘 초대형 온천장은 없지만, 노천탕, 가족탕, 남녀 혼탕 등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수백 군데의 온천이 지역의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일본 전통 숙박시설인 고급 료칸과 결합된 최고급 온천에서부터, 저렴한 민박집에서 운영하는 온천, 200엔의 요금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공동온천 등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거리 곳곳에는 무료 족탕 시설이 있어서 누구나 편하게 쉬면서 족욕을 즐길 수 있다. 유후인이 유명 관광지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유후인이 자랑하는 풍부한 수량과 양질의 온천이지만 단지 온천만을 목적으로 사람들이 유후인을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유후인에는 온천 외에도 관광객을 끄는 많은 명소들이 있다.

유후인 관광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는 유후인 역이다. 유후인 역에는 유후인노모리(由布院の森-유후인의 숲이라는 뜻)라고 이름 붙어진 초록색의 예쁜 관광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오이타 현 출신으로 일본이 자랑하는 유명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가 설계한 유후인 역은 유후인 관광의 관문이자 관광 명물이다. 역사 외관도 독특하지만 역사 내 대합실 자체가 아트 갤러리로 꾸며져 있다. 유후인 역 구내 승강장에는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족욕 시설도 있다. 유후인의 또 하나의 상징적 장소가 긴린코(金鱗湖)호수다. 석양 무렵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잉어가 햇빛에 반사되어 금빛으로 보인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자그마한 호수는 아침 안개의 몽환적 분위기로 유명하다. 유후인 역에서부터 긴린코 호수 사이는 약 30분 도보 거리인데, 이곳에 유후인을 상징하는 작은 가게들, 음식점과 카페, 공방, 미술관 등이 밀집되어 있다. 유후인이 인기 있는 관광지인 이유는 질 좋은 온천과 함께 유후인 거리의 독특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유후인을 찾는 관광객들의 대부분이 매우 좁은 유후인 시내에 집중되기 때문에 시내는 항상 관광객으로 붐빈다. 유후인 시가지를 벗어나면 바로 산과 들이 펼쳐져 있다. 도시 북동쪽에는 유후인의 상징이자 유후인 온천수의 원천인 유후다케(由布岳-해발 1584m의 화산)가 우뚝 솟아 있고 많은 등산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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