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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수도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호주의 수도를 시드니로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뉴질랜드의 수도를 오클랜드(Auckland)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지난 1865년 오클랜드로부터 수도가 이전된 이후 지난 150년 가까이 웰링턴은 뉴질랜드의 공식수도로 존재해 왔다. 웰링턴의 도시명은 영국의 공작이자 정치인인 웰링턴(Great Duke of Wellingto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웰링턴은 남섬과 북섬으로 나누어진 뉴질랜드 국토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정학적 특성에 따라 수도로 지정되었다.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을 접하고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환경조건을 뜻한다. 웰링턴은 그 옛날 마오리족이 발견한 항구를 따라서 발달한 도심지역과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천혜의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인구 46만 명의 아담한 도시다. 웰링턴의 인구는 뉴질랜드 전체 인구의 4.5% 수준으로 인구규모면에서는 적은 편이지만 거주환경 개선과 산업발전을 통해 향후 꾸준한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전체 웰링턴 인구의 70%는 유럽인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마오리가 7%, 태평양계 5%, 아시안 13%, 기타 5%로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진 다인종다문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도시 남부를 둘러싼 항구는 그 웅장함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항구 원형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웰링턴은 도심과 멀지 않은 곳에 중심항구가 위치한 까닭에 뉴질랜드 북섬과 남섬을 잇는 국내 운송의 요충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시내도심은 북동쪽으로 길게 뻗어 헌트 밸리(Hunt Valley)에 이르며 서부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곧게 뻗은 길쭉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도심은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뒤를 가파른 산세가 병풍처럼 휘감아 돌면서 대도시의 웅장함과 세련미 그리고 시골마을의 아담한 정취를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뉴질랜드 북섬의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웰링턴은 전 세계 수도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쿡 해협(Cook Straight)을 사이에 두고 맑은 날에는 멀리 눈 덮인 남섬을 바라볼 수도 있다. 마우이(Maui) 전설과 마오리 역사가 깃든 도시 웰링턴의 역사는 마오리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데 역사 속 주인공은 마우이(Maui)다. 그는 아주 오래전 뉴질랜드를 창조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 신화적인 존재로, 마오리 신화에 의하면 반신반인, 즉 절반은 신(神)이고 절반은 사람인 그가 낚싯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 올렸는데, 마우이가 타고 온 낚싯배는 지금의 남섬이 되었으며 낚아 올린 물고기는 지금의 북섬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웰링턴의 원래 이름은 ‘Te Upoko-o-te Ika a Maui’로 ‘the head of Maui? fish’, 즉 마우이가 잡은 물고기의 머리 부분이라는 뜻이다. 마오리족은 뉴질랜드를 ‘아오테아로아(Aotearoa)’ 즉 ‘길고 흰 구름의 나라’로 칭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북섬의 모양은 마치 물고기 모양과 같고, 그중에서도 머리 부분이 가장 탐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머리 부분 중에서도 눈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둥근 원형모양의 웰링턴 해변인 것이다. 실제로 마오리족이 웰링턴을 발견한 것은 12세기 초 무렵이다. 와통가(Whatonga)족의 아들인 Tara가 북섬 최남단을 둘러본 후 해안을 끼고 있는 이곳이 살기 좋은 땅임을 아버지에게 고하면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일부 마오리들은 웰링턴을 ‘Te Whanganui a Tara(The Great Harbour of Tara)’, 즉 ‘Tara의 대항구’라 칭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웰링턴이 현대적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무렵부터다. 1839년 유럽인들은 최초로 배를 타고 웰링턴항에 닿았고, 이때 소수의 마오리 정착민들을 만났지만 이들은 마오리의 영토권을 지속시켜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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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보존을 위한 시민과 시당국의 공동참여 웰링턴 시내를 관통하는 길을 걷다보면, ‘shoreline 1840’이라고 새겨진 보도블록이 보인다. 이는 1840년까지 이곳이 바다였음을 알리는 증거로 윌리스 스트리트(Willis Street) 바깥지역은 바다를 매립해 일군 간척지인 셈이다. 초기 웰링턴에 정착한 백인들은 웰링턴의 주거지역이 매우 협소함을 깨달았다. 이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바다를 매립하기 시작했다. 1852년 평범한 엔지니어 카터(Carter)가 윌리스 스트리트를 기준으로 벽을 쌓고 바닷물을 막아 3만 6천m2에 이르는 간척지를 만들었다. 그러자 1870년 시당국이 70에이커의 면적을 추가로 매립하였다. 이러한 초기 간척사업은 선박의 항구 접안을 용이하게 하는 동시에 항구에 철로를 설치하여 운송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1960~1970년대 들어서 간척사업은 롤러를 이용한 새로운 컨테이너식 화물운송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서 필요한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현재 웰링턴항은 총 6,284개의 컨테이너를 동시에 적재하고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뉴질랜드 정부도 이러한 도시개발을 위한 시민의식과 시당국의 노력을 기리기 위해 웰링턴 시내 14곳에 기념패를 설치하였다. 기념패는 시민과 시당국에 의해 지난 150년간 꾸준하게 이루어진 간척사업이 도시발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되새기게끔 한다.웰링턴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카로리 야생보호구역(Karori Wildlife Sanctuary)은 울창한 산림을 자랑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었다. 당시 이곳에 댐이 있었지만, 웰링턴시 당국이 댐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시키고 이곳에 신도시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웰링턴지역 환경전문가와 시민들은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를 결성하여 대대적인 시민운동을 펼친 끝에 지금은 신도시 개발지역에서 뉴질랜드 토종 동식물이 마음 놓고 서식하는 야생국립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상당수의 웰링턴 시민이 조림, 자료수집, 펜스점검, 가이드 등과 같은 자원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환경보전을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공감한 웰링턴시 당국도 ‘환경보호국’을 신설하여 이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외지의 동식물이 보호구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펜스를 설치하기 위한 사전조사에만 3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현재 이곳은 뉴질랜드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로 변하였다. 도시발전과 환경보존을 위해 이렇듯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웰링턴 시민들의 모습에서 강한 시민의식을 느낄 수 있다. 뉴질랜드는 각 지역에 지역협의회(Regional Council)를 두어 환경관리, 토지관리, 재난관리, 공원관리, 대중교통관리, 수자원관리 등과 같은 도시개발과 보존의 책임을 맡기고 있다. 웰링턴시는 범웰링턴지역협의회(Greater Wellington Regional Council)와 웰링턴시협의회(Wellington City Council)를 운영함으로써 개발과 보전을 통한 도시의 지속적인 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최근 범웰링턴지역협의회는 지역의 자원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대기의 질, 에너지 소비, 쓰레기 처리, 수자원 보호 등에 대한 집중 관리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도시발전 10개년계획’에 관한 전략을 공모하고 그 결과를 도시발전전략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도시발전을 위한 시민과의 교감을 확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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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선사한 도시 웰링턴처럼 도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해안과 자연지대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웰링턴이 시도한 최초의 친환경정책은 도심주변을 드넓은 녹색공원으로 둘러싸는 일이었다.녹색공원은 ‘Town Belt’라 부르고 있으며 웰링턴 시내에만 102곳이나 된다. 이 같은 시도는 웰링턴 시민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웰링턴 시민의 대부분은 바쁜 도심을 벗어나 산이나 해안가에 베드타운을 형성하여 생활하고 있다. 웰링턴은 편의시설이나 교통의 접근성보다는 조망권에 따라 집값이 결정될 만큼 수려한 자연풍광을 지니고 있다. 웰링턴을 매력적인 자연환경의 도시로 만든 또 다른 요인은 기후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뉴질랜드의 북섬과 남섬은 그 긴 지형만큼이나 기후대도 다양하지만, 북섬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웰링턴은 여름 평균기온 섭씨 17°C(2월 기준), 겨울 평균기온 섭씨 9°C도(7월 기준)로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이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아담한 도심과 맞닿은 주변 환경은 웰링턴 시민들에게 여유와 풍요로움을 안겨준다. 대부분 시민들은 낮엔 도심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해안가 거주지 주변을 한가로이 산책하며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도시를 만끽한다. 단, 한 가지 웰링턴을 괴롭히는 자연조건은 바람이다. ‘Windy Wellington’이란 애칭을 가질 정도로 접하고 있는 태즈먼해(Tasman Sea)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심한 날에는 해안도로가 통제되기도 한다. 하지만 바람 덕에 더운 여름에도 기온이 높게 올라가거나 습도가 높지 않아 상쾌한 여름을 보낼 수 있다. 최근 뉴질랜드는 국가브랜드 홍보에 ‘100% Pure’, 즉 100% 순수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자연의 선물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성장하는 영화산업 하늘 길과 바다 길이 시원스럽게 뚫린 웰링턴은 공항과 항만을 통해 뉴질랜드 산업을 주도해 왔지만, 1980년대 시장개방으로 인해 중공업을 비롯한 제조업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 무렵 급부상한 산업이 바로 영화산업이다. 영화 ‘Lord of the ring(반지의 제왕)’이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 이후 웰링턴에는 영화자본이 속속 몰리고 있다. 웰링턴이 고향인 피터잭슨 감독은 영화흥행을 계기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감독의 반열에 오른 것은 물론 뉴질랜드를 영화산업의 변방에서 중심지로 탈바꿈시켰다. 영화가 촬영된 빅토리아산 중턱 소나무 숲은 이미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으며, 피터잭슨이 직접 오픈한 영화제작소는 최첨단 촬영기법을 활용해 영화를 제작해 보려는 전 세계 영화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훌륭한 인적자원이 도시에 어떠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으로, 피터잭슨은 웰링턴 지역경제에 기여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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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교통수단, 케이블카 웰링턴시는 도시의 양쪽 끝을 30분 만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규모지만 교통편이 불편한 것은 아니다. 관광을 위한 케이블카가 도시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이라면 어떨지, 더구나 철제가 아닌 나무로 만든 고풍스런 케이블카라면 어떨까. 이곳 웰링턴에서는 이런 상상을 할 필요가 없다. 도심의 램튼 선착장(Lambton Quay)에서 출발하는 케이블카는 도심의 쇼핑중심가와 빅토리아대학교를 거쳐 보타닉가든 정상까지 628m를 잇는다. 웰링턴 케이블카는 공중에 달린 케이블을 따라 이동하는 여느 관광용 케이블카가 아니라 지상으로부터 120m 높이에 설치된 철도궤도를 따라 두량의 객차가 120개의 롤러에 의지한 채 세 개의 터널과 세 개의 다리를 시속 18km 속도로 움직이는 운송용 기차인 셈이다. 1902년 처음 설치된 케이블카는 이제 100년을 훌쩍 넘긴 역사 속에서 연간 100만 명 이상을 수송하는 웰링턴의 명물이자 시민의 발이 되어 왔다. 출퇴근시간에는 정원 100명이 꽉 찰 정도로 만원이다. 케이블카의 소유와 관리는 웰링턴시협의회에 있으며, 매년 적자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케이블카가 웰링턴시민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웰링턴시의 개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세기 말 웰링턴시는 급격한 인구증가로 인해 도시 뒤편 산 언덕인 캘번(Kelburn) 지역이 대표적인 거주지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캘번에 집단으로 거주하는 시민들이 도심왕래에 불편을 겪으면서 효과적인 교통수단으로 케이블카를 제안하였고, 캘번 지역 거주자들은 Kelburn & Karori Tramway 주식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당시 카오리(Karori) 지역관청은 이 회사에 케이블카 설립과 운영을 허가하는 대신 1천 파운드의 기부금을 통해 캘번 지역에 대학건립을 요청하였고, 이때 설립된 대학이 웰링턴의 유일한 대학이자 자존심인 빅토리아대학교(Victoria University)다. 빅토리아대학생들은 예나 지금이나 도심과 학교를 오가는 주요교통수단으로 케이블카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회사는 대학유치를 통해 지역발전과 안정적인 케이블카 운영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1899년부터 설치작업에 들어간 케이블카는 1902년 웰링턴 시민들에게 첫 선을 보인 이후 지금까지 웰링턴 시민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사진제공(전부): 뉴질랜드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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