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중국’ : 바깥이 없는 사회의 슬픔 |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고전이 힘을 얻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고전 읽기를 강조하고, 출판계에서는 고전 다시 쓰기를 기획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얄팍한 인스턴트 지식들을 떨쳐내고 심신을 울리는 묵직한 고전의 쇳소리를 듣고 싶은 것일 게다. 하지만, 큰 결심하고 동서양 고전 백선 목록에서 어렵사리 몇 권 골라 책을 읽어도 기대한 쇳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면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말하리라. 고전은 언제나 우리의 바깥에서만 맴돌고 있다고. 그래서, 고전을 모른다고. 그러나, 박제가(朴齊家, 1750~1805)는 반대로 말한다. 고전은 언제나 우리의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고. 그래서, 고전을 알기 어렵다고. 과연 그러한가? |
우리나라 시는 송(宋), 금(金), 원(元), 명(明)을 배운 사람이 상류이다. 당(唐)을 배운 사람이 그 다음이다. 두보(杜甫)를 배운 사람이 최하이다. 배운 내용이 더욱 높을수록 그 재주가 더욱 낮은 것은 어째서일까? 두보를 배운 사람은 두보가 있음만 알 뿐이다. 그 나머지는 보지도 않고 먼저 업신여긴다. 그래서, 작법이 더욱 졸렬하다. 당을 배운 사람의 폐단도 똑같이 그렇지만 그래도 조금 나은 것은 두보 외에도 오히려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 위응물(韋應物), 유종원(柳宗元) 등 수십 명 시인의 이름이 가슴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두보의 시보다 더 나은 시를 지으려 하지 않아도 절로 더 나은 시를 짓게 된다. 송, 금, 원, 명을 배운 사람은 그 식견이 다시 이보다 앞서 있을 것이다. 그러니, 또 하물며 보다 더 많은 책을 널리 모두 읽고 참된 성정(性情)을 일으킨 사람이겠는가. 이렇게 볼 때 문장의 도는 심지(心智)를 열고 이목(耳目)을 넓히는 데 있지 어느 시대의 작품을 배웠느냐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 |
-박제가(朴齊家 1750~1805),「시학론(詩學論)」,『정유각문집(貞蕤閣文集)』 |
※ 이 글의 원문텍스트는 한국고전종합DB 홈페이지에 수록된 한국문집총간 261집《정유각집(貞蕤閣集)》권1, 논(論),〈시학론(詩學論)〉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원문 바로가기] |
![]() ▶ 청나라 화가 나빙(羅聘 733~1799)이 그린 박제가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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