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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안고 살기 보다는

부끄러움 안고 살기 보다는
부끄러움 안고 살기 보다는
부끄러움 없이 죽는 것이 낫다.
與其負愧而生 不如無愧而死
여기부괴이생 불여무괴이사

- 이유원(李裕元 1814~1888)
 <의명(義命) >
《임하필기(林下筆記)》

 

  이 말은 조선시대 전기의 송인수(宋麟壽 1499~1547)라는 분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들에게 남긴 말인데, 조선후기의 문신인 이유원이 자신의 저술에서 그 일화를 전하고 있다. 송인수는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가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명을 전하러 온 사자가 그의 집에 이르렀던 날이 마침 그의 생일이어서 많은 친족과 문생들이 모였는데 그 소식을 듣고는 모두 통곡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 놀라는 기색 없이 목욕하고 관복을 갖추고서 태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아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의 죽음을 괘념치 말고, 부지런히 독서하고 술과 여색을 경계하여 구천(九泉)의 영혼을 위로하라. 부끄러움 안고 살기 보다는 부끄러움 없이 죽는 것이 낫다.”

  죽음 앞에서도 구차하지 않고 초연했던 선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부끄러움 앞에 죽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부끄러움을 초래한 자신의 잘못을 고쳐 새롭게 거듭나야 할 때도 있고, 떳떳한 사람을 부끄러운 사람으로 몰아가는 세상을 바로잡아야 할 때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더 이상 부끄러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끝난 자신의 생명력을 억지로 연장하려고 힘에 빌붙어 구차히 살기를 도모하는 사람을 볼 때에 우리는 그를 더럽게 여기고,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볼 때에는 분노를 느낀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아는 것이 참다운 선비의 모습일 것이다.
  부끄러움을 가지고 생사(生死)를 논하는 것이 너무 무거울까?
  그럼 진퇴(進退)를 논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