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한중 연합군이 일본과 싸워 승리하다
1905년, 한중 연합군이 일본과 싸워 승리하다 |
지나간 미래처럼 흥미로운 것도 없다. 한 사람의 인생사는 끊임 없이 삶의 갈림길에서 무언가를 선택해 온 이야기이다. 그의 경험은 그가 선택한 것으로 짜여진 것이지만 그의 기대는 그가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가득차 있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경험만 알아서는 안 된다. 기대를 알아야 한다. 비록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지나간 미래로 남아 있는, 사실(fact)이 아닌 반사실(counterfact)에까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흥미진진한 가상의 세계에 푹 빠져 새로운 리얼리티를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이성계의 고려군이 위화도를 넘어 요동에 들어갔다면? 만약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다면? 이러한 반사실적 질문이야말로 경험에 한정된 사안(史眼)을 고쳐 시대의 기대 지평을 통찰하게 인도하는 훌륭한 길잡이일지 모른다. 아래에 우리나라 역사의 어떤 지나간 미래 이야기를 한 토막 적어 본다. 제목은 ‘1905년, 한중 연합군이 일본과 싸워 승리하다’로 잡아 보았다. |
아아! 원통하다. 분하다. 하찮은 섬나라 오랑캐가 중국과 우리나라에 해를 끼친 것은 예부터 그랬지만 근래 이른바 개화란 것이 생긴 후에는 설쳐 대는 것이 더욱 끝이 없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일본은) 갑신년(1884)에는 김옥균, 박영효 등 역적들과 모의하여 변란을 일으켜 우리 임금을 협박하고 귀척과 근신을 많이 죽였다. 화변이 어찌될지 예측할 수 없었는데 다행히 중국 대인 원세개(袁世凱)가 구원하러 와서 모면할 수 있었다. 갑오년(1894)에는 군사를 이끌고 와서 종묘의 중요한 보물을 훔쳤고, 을미년(1895)에는 저들이 김홍집, 유길준 등 역적들과 결탁해 우리 국모를 시해하고 우리 군부를 욕보이고 우리 조종의 법제를 모조리 멸하고 우리 인민의 의발을 서둘러 훼손하였다. 화변이 다시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는데 다행히 의병이 일어나고 조신(朝臣) 두 세 사람이 이로 인해 계책을 내서 역적 몇몇을 죽여 형세가 변해 조금 편안해졌다. 하지만, 저들 두 세 사람은 충신으로 역신을 토벌한 것이 아니라 이익을 탐해 권세를 빼앗은 것이었다. 더욱이 나라의 충신은 당시 모두 조정에 용납되지 못하고 조정에 있는 신하들은 모두 부끄러움도 없이 이익을 탐하는 무리들이었다. 저들에게 복수하기는커녕 도리어 더욱 힘껏 저들에 붙어 오늘의 큰 화를 키웠다. 오늘 저들은 먼저 일국의 동학(東學) 비류(=일진회)를 선동하여 우리 정부를 흔들고 이권을 빼앗았다. 이미 흔들고 빼앗더니 마침내 군신을 억눌러 손 쓸 데가 없게 되었다. 정령과 관작, 재리와 민사를 하나같이 아울러 자기들이 주관하고 본국인은 간여하지 못하게 하였다. 기타 간악하게 굴고 흉악하게 굴었던 것이 끝이 없어서 일일이 거론할 수 없으며 형세가 장차 전국을 빼앗고야 말 것 같다. |
- 유인석 (柳麟錫 1842~1915) 「중국에 가는 백경원을 보낸다[送白景源入中國]」, 『의암집(毅菴集)』 |
![]() ▶ 춘천시 의암공원 내에 있는 의암 유인석 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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