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나이는 몇 살일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해부터 셈하면 올해로 어언 565년이다. 하지만,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발간된 해부터 셈하면 115년이고, 한글전용과 가로쓰기로 무장한 한겨레신문이 발간된 해부터 셈하면 겨우 23년이다. 한글은 나이 지긋한 문자일지 모르나 정작 한글 대중은 아직 새파란 청춘이다. 한글 대중의 성장은 한문 대중의 쇠퇴를 의미한다. 카카오톡으로 전달되는 한글 문자 메시지만 하루에 총 5억 건으로 추정된다고 하는 오늘날 한문으로 문자는 고사하고 편지를 보내는 건수가 하루에 과연 얼마나 될까? 한문 대중은 일상에서 사실상 소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한글을 위해 비극이다. 한글은 한글 대중에게 너무나 친숙해 있기 때문에 한글에 대한 문명사적 성찰이 한글 대중으로부터 내부적으로 나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20세기를 살았던 한학자들의 한글 인식은 오늘날 한글 대중의 관성적인 한글 인식을 초월하는 지적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 김인후(金麟厚)의 13대손으로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인 김로수(金魯洙 1878~1956)가 해방 공간에서 지은 「경암야언(敬菴野言 1945~1950)」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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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이(倭夷)의 시대에 우리 도가 비록 양구(陽九)1)에 있었지만 저들은 우리와 종족이 같았고 문화가 같았고 종교가 같았기 때문에 한편으로 공자를 높이고 한편으로 한문을 배웠다. 지금 저들(=미군정)은 우리와 종족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종교도 달라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한문이 어떤 글자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학(新學) 하는 무식한 무리가 다시 창귀(倀鬼)2)가 되어 음만 있고 뜻이 없는 언문만 배우자고 창도하니, 한문은 금하지 않아도 절로 금해지게 되었다. 진(秦)나라 정(政, 진시황(秦始皇)의 이름)이 비록 시서를 불사르고 유생을 묻었어도 의약(醫藥)ㆍ복서(卜筮)ㆍ종수(種樹) 등의 책은 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왕의 도학이 망했어도 문자는 망하지 않았고, 다시 이세(二世)가 몇 년 안 가 망해서 한(漢)나라가 일어나 곧 유교를 부흥시켰다. 그래서 중국의 유교는 지금까지 4천여 년이 된다. 지금 우리 한국은 분서갱유를 하지 않아도 가르치는 이가 없고 배우는 이가 없어 결국 무용지물이 되어 자연히 멸망할 것이다. 그 재앙이 혹독하고 매운 것이 진나라 정의 때보다 만 배는 된다. 하늘이 사문(斯文)을 도우사 속히 건국(建國)하여 다시 거의 끊어진 문과 거의 어두워진 도를 회복해 주기를 원한다. 천만 피눈물 흘리며 기원하는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다.
1) 양구(陽九) : 1원(元), 곧 4560년 중에서 처음 106년째와 960년째에 발생하는 9년 간의 한재(旱災). 전하여 큰 재앙을 뜻하는 말이다. 2) 창귀(倀鬼) :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호랑이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이다.
2. 저들은 말한다. "한문(漢文)은 중국의 글이고 한문(韓文)은 우리나라의 글이다. 한문(漢文)은 더디고 배우기 어렵고 한문(韓文)은 빠르고 배우기 쉽다. 어찌 우리나라의 배우기 쉬운 글을 버리고 반드시 중국의 배우기 어려운 글을 배우려 하는가?" 이는 단지 언문(諺文)만 배워 진서(眞書)를 모르는 사람의 말이다. 한문(漢文)이 우리 한국에서 사용된 것이 4천여 년이나 되었으니 곧 한문(韓文)이 되었다. 비유컨대 물건을 사 오면 내 것이 되는 것과 같으니 이와 무엇이 다른가? 또, 시조가 중국에서 온 사람도 그 후손이 모두 우리나라 사람인데 지금 우리 민족이 아니라 하고 모두 쫓아 버릴 것인가? 외국의 기계와 물건이 우리나라에서 산출된 것이 아니라 하고 모두 사용하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법률과 기계는 피차를 막론하고 오직 좋은 것을 취하는 때를 만나 어찌 사천 년 동안 써 왔던 천하에 가장 좋은 글을 우리 글이 아니라 하고 버린단 말인가? 비록 더디고 배우기 어렵다 해도 배우는 사람의 재능에 따라 4, 5년 할 수도 있고 10년, 20년 할 수도 있고 종신토록 전문으로 할 수도 있다. 어떤 학문을 막론하고 대강을 학습하면 쉽고 빠르며, 깊은 데까지 다하고 미세한 데까지 연구하면 더디고 어려운 법이다. 어찌 한문만 그렇겠는가? 언문은 세종대왕이 창제했는데 부녀와 초목(樵牧)에게 가르치고자 한 것으로 진서를 번역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비록 배우기 쉽고 빨라도 만약 정미한 영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다년간 공부를 해야 한다. 진서를 배우지 않고 단지 언문만 배우면 음만 알고 뜻은 몰라 음 하나가 혼잡해지면 변석할 수 없다. 진서 한 글자를 언문으로 서너 글자로 풀이하면 번잡함과 혼란함이 막심하니 차라리 언문을 폐할지언정 진서를 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진서는 본(本)이고 원(源)이다. 언문은 말(末)이고 유(流)이다. 본말과 원류를 겸비하고 병용한 뒤에야 문명국이라 할 수 있다. 학무국의 대인들이 이를 통찰하고 재단하여 5천 년 문명 예의지방이 이적금수의 구역으로 침몰하지 않게 해 준다면 천만 매우 다행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