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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을 붉게 수놓은 진달래도 지기 시작하고 이제 노란 개나리가 한창이다. 신록이 풀어놓는 연녹색 물감이 온 산에 번지고 새들은 가릉빈가(迦陵頻伽)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자연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그런데 장자(莊子)는 이 세상을 이대로 꿈이라 하였다. 정녕 꿈이라면 미추(美醜)도 시비(是非)도 변별할 필요가 없을 터, 그냥 이대로 꿈속에서 잠들어야 하는가. 저 곱게 핀 진달래와 개나리는 또 어찌 하란 말인가.
사물은 애초에 변별(辨別)이 없기도 하고 애초에 변별이 있기도 하니, 변별이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천하가 통틀어 한 물건이고, 변별이 있다는 측면으로 말하면 나의 몸조차 한 물건이 아니다. 천하가 통틀어 한 물건이고 보면 장주(莊周)와 나비, 나비와 장주에 어찌 변별이 있으리오. 나의 몸조차 한 물건이 아니고 보면 나비와 나비, 장주와 장주에 어찌 변별이 없으리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고 보면 나비가 애초에 나비가 아니었고,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었고 보면 장주가 애초에 장주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말한 꿈속에 너울너울 날아다니던 나비가 장주가 아니었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으며, 꿈에서 깬 장주가 나비가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말한 꿈에서 깬 상태가 꿈이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으며, 꿈속에 너울너울 날아다니던 때가 생시가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이를 적궤(弔詭)1)라 하니, 그 뜻은 큰 성인인 황제(黃帝)도 잘 알지 못했고 비록 만세(萬世)의 뒤에 큰 성인이 출현할지라도 역시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장주는 그대로 장주라 하고 나비는 그대로 나비라 하느니만 못할 것이니, 이를 ‘인시(因是)2)’라 하며 이를 ‘불변지변(不辨之辨 분변하지 않는 분변)’이라 한다. 불변지변은 오직 성인이라야 알 수 있다.
1) 적궤(弔詭) : 지극히 이상한 일이라는 뜻이다. “구(丘)와 너는 모두 꿈속에 있으며, 내가 너에게 이처럼 꿈이라고 말하는 것도 꿈이다. 이러한 말을 이름하여 ‘적궤’라 한다.[丘也與女,皆夢也;予謂女夢,亦夢也. 是其言也, 其名爲弔詭.]” 하였다. 《莊子 齊物論》 2) 인시(因是) : 모든 것은 상대적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어느 한쪽에 집착하지 않고 ‘옳음은 옳음대로 두고 그름은 그름대로 두는 것[因是因非]’이 천리(天理)를 따르는 지극한 도라는 것이다. 《莊子 齊物論》
[物未始有辨, 亦未始無辨. 卽其無辨者而觀之, 則天下同一物也; 以其有辨者而言之, 則吾身非一物也. 天下同一物, 則周之與蝶 ․ 蝶之與周, 其有辨乎! 吾身非一物, 則蝶之與蝶 ․ 周之與周, 其無辨乎! 周之夢爲蝶, 則蝶未始爲蝶; 蝶之夢爲周, 則周未始爲周. 庸詎知吾所謂栩栩然之非周歟, 蘧蘧然之非蝶歟! 庸詎知吾所謂蘧蘧然之非夢歟, 栩栩然之非覺歟! 此之謂弔詭. 大聖黃帝之所聽瑩, 萬世之後, 雖遇大聖人者出, 亦莫之以解. 然則莫若因其周而周之, 因其蝶而蝶之. 此之謂因是, 此之謂不辨之辨. 不辨之辨, 唯聖者知之.]
- 이행(李荇),〈장주호접변(莊周胡蝶辨)〉, 《용재집(容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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