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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년(1866) 8월에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가, 조선이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했다는 구실로 조선을 침략했다. 지금의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楊花津)까지 왔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자 돌아가서 병력을 보강하여 9월에 다시 침입하였는데, 강화(江華)를 공격하여 강화성(江華城)을 점령하고 서적을 약탈하였다.
이 시는 한말의 항일 의병장으로 유명한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선생이 1866년 9월 무렵에 지은 것이다. 프랑스 함대가 침입하자 온 나라가 흉흉하였는데, 한심하게도 조정에는 이를 물리치려는 계책은 없이, 피난을 가거나 강화(講和)하자는 논의만 무성할 뿐이었다. 의암의 스승인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선생은 노구(老軀)를 이끌고 서울로 올라가, 목숨을 걸고 싸워 지켜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를 계기로 조정에서는 이항로의 문인(門人)인 양헌수(梁憲洙) 장군을 강화로 파견하였다. 10월 3일에 양헌수 장군은 500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기습작전을 감행하여 정족산성(鼎足山城)에서 프랑스 군대를 대파하였는데, 이때의 승리가 프랑스 군이 퇴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난주에 프랑스에서 외규장각(外奎章閣) 도서 일부가 임대의 형식으로 돌아왔다. 이 도서가 바로 병인양요 때에 프랑스가 약탈해 갔던 책들이다. 주인은 우리인데, 도둑질해 간 저들이 임대해 준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145년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고 하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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