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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대학도시에서 첨단 과학도시로, 케임브리지

문화도시인 2010. 5. 25. 11:19

역사적 대학도시에서 첨단 과학도시로, 케임브리지

 

 

공원 같은 케임브리지 사이언스 파크

퀸스 칼리지에 있는 수학의 다리
 
 

케임브리지 시내를 가로지르는 캠강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북북동 방향으로 직선거리 약 8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케임브리지(Cambridge)는 현재 인구 약 12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다.
하지만 이곳에 소재한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명성으로 인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대학도시다. 캠(Cam)강을 가로지르는 다리(Bridge).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의 이름이자 그 대학이 자리 잡은 도시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케임브리지라는 지명의 어원이 된 다리는 9세기경부터 존재했다고 하며, 그 무렵부터 케임브리지는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상업도시로 성장하던 케임브리지가 대학도시로 변모하게 된 것은 약 8백 년 전인 1209년 옥스퍼드(Oxford)에 있던 학자들이 그곳 주민들과의 싸움을 피해 케임브리지로 옮겨와 정착하면서부터다. 케임브리지에 최초의 칼리지가 설립된 것은 1284년으로 이때부터 케임브리지라는 도시의 역사는 바로 대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케임브리지대학교가 없는 도시 케임브리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학교는 도시의 기능 및 공간구조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핵심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케임브리지 시내 중심가이며, 도시 인구의 상당수가 이 대학의 학생과 교수, 직원, 연구원 등 대학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칼리지가 중심인 대학 생활


도시 케임브리지와 케임브리지대학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독특한 칼리지(College) 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중세 수도원의 교육방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핵심은 학생이 스승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일대일 대화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케임브리지의 모든 학부 학생들은 반드시 한 칼리지에 소속되며, 그 안에서 숙식이 의무화되어 있다. 그리고 전공교육과는 별개로, 칼리지 소속 교수와 개인면담을 통한 교육, 즉 슈퍼비전(Supervisions)을 받는다. 각 칼리지는 독자적인 재정을 운영하며, 교수진, 기숙사, 도서관, 세미나실, 운동장 등도 각기 별도로 운영한다. 이처럼 칼리지는 학생과 교수들의 학문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 역할을 한다.

현재 케임브리지에는 31개의 칼리지가 있다. 각 칼리지는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 중에서 특히 유명한 칼리지는 위대한 졸업생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트리니티(Trinity) 칼리지와 화려한 건물 외관으로 대학교의 상징으로서 널리 알려진 킹스(King's) 칼리지다. 이처럼 작은 성채 같은 칼리지들이 도시 곳곳에 독립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케임브리지라는 도시 조직의 골격과 경관을 형성한다. 벽돌과 돌로 둘러싸인 격조 있고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 건물의 유일한 출입구인 육중한 철문 앞에 붙어 있는 독특한 문양, 철문 사이로 살짝 보이는 칼리지 내부의 아름다운 정원, 뾰족한 첨탑 지붕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 이같이 각 칼리지에서 풍기는 고풍스럽고 학구적인 분위기가 바로 도시 케임브리지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출신들은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경제학 등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도 뛰어난 업적을 많이 남겼다. 대체로 케임브리지의 학풍은 보수적인 옥스퍼드보다 좀 더 진보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케임브리지대학교에는 약 1만 2천여 명의 학부생들과 6천여 명의 대학원생들이 있다. 학부 과정이 3년이고, 매년 세 번의 학기가 이어진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여가활동이자 사회활동으로 크리켓과 럭비, 축구 같은 단체스포츠를 즐긴다. 이 같은 단체스포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보트 경주(Rowing Race)다. 대학 내부의 각 칼리지마다 보트 팀이 있어서 칼리지의 명예를 걸고 대항전을 한다. 또 일 년에 한 번 케임브리지대학교 대표팀과 라이벌 옥스퍼드대학교 대표팀 간의 보트 경주가 있다. 이 때문에 케임브리지를 가로지르는 캠강에서 평소 학생들 여럿이 열심히 배를 젓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근교에도 케임브리지라는 동명의 도시가 있다. 이 도시의 이름이 케임브리지가 된 이유는 1638년 미국 동부에 정착한 청교도들이 하버드대학교를 설립하고 나서 이 대학교를 영국의 케임브리지를 본뜬 훌륭한 대학으로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교 설립에 기여한 존 하버드가 케임브리지대학교 졸업생이었던 것도 도시 이름을 결정짓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미국의 케임브리지에도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성장한 하버드와 MIT가 있어서 원조인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교와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시내의 노천시장
켐임브리지 시내 전경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전통문양이 달린 칼리지 외관

 
 
 


케임브리지 현상

케임브리지는 30년여 전까지만 해도 중세부터 내려오던 고풍스러운 대학도시의 모습에서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케임브리지는 세계 최고의 대학이 있는 도시로 유명했지만, 그 주변지역은 전형적인 낙후 농촌지역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케임브리지 및 그 주변지역은 소규모 첨단기술기업들의 창업이 줄을 잇고, 관련 기업들이 이주해 오면서 이른바 케임브리지 현상(Cambridge Phenomenon)이라고 일컬어지는 첨단산업의 급속한 발전을 경험하게 된다. 현재 케임브리지 및 그 주변지역은 영국에서 인구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지역이며, 유럽에서 가장 큰 첨단산업 클러스터 중 하나다. 낙후된 농촌지역에서 첨단산업의 중심지로 변신하게 된 케임브리지의 성공 사례는 도시 및 지역연구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고, 케임브리지의 성공 원인을 분석하기 위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케임브리지에서 첨단산업이 발전하게 된 것은 케임브리지대학교 덕분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연과학 연구와 실험이 이루어졌던 케임브리지대학교 주변에는 19세기부터 이미 이 대학에 실험기구와 재료를 납품하는 소규모 업체들이 있었고, 이들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첨단제조업의 뿌리를 형성하였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케임브리지대학교는 컴퓨터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연구 중심지였다. 하지만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이러한 잠재력이 발휘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지역의 도시계획 정책이 역사적 대학도시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이 지역의 물리적 성장과 새로운 기업 입지를 엄격히 규제하는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이곳에서 성장하기가 어려웠고, 외부 기업들이 진입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1960년대 말부터 지역경제의 낙후와 높은 실업률 등으로 인해 정책 방향의 전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특히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우수한 과학적 역량을 산업 발전과 연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 결과 굴뚝산업이 아니라 대학의 과학연구에 기반한 첨단기술산업을 케임브리지 안에서 제한적으로 수용해야 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대학과 산업의 연계를 촉진하기 위해 인위적인 과학단지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에 따라 1970년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케임브리지 과학단지(Science Park)를 처음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수많은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에서 나온 탁월한 연구 성과들은 첨단기업의 성장에 훌륭한 촉매제가 되었다. 연구자들에게 지적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창업을 적극 유도한 대학 당국의 정책, 대학도시 특유의 진취적인 문화와 이곳을 떠나기 싫어하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졸업생들, 기존 산업의 발전이 미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낡은 산업구조의 관성이 거의 없어서 새로운 혁신에 대한 저항이나 거부감이 없었다는 점 등이 케임브리지 성공의 주요 요인으로 분석되었다.

세계적 첨단 과학도시로 발돋움

탁월한 연구 성과가 대학교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데다가 창업과 기업활동에 대한 각종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 케임브리지 및 그 주변지역은 영국을 대표하는 첨단기술산업 집적지로 성장하였다. 이 지역은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첨단기술산업 집적지인 실리콘밸리와 자주 비교된다. 그래서인지 케임브리지 일대를 실리콘밸리와 이 지역 지명인 펜랜드(Fenland)를 합성한 '실리콘 펜'으로 부르기도 한다. 케임브리지가 이렇게 변신하는 데 기폭제가 되었던 케임브리지 과학단지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또 가장 명성 있는 사이언스 파크(Science Park)다. 현재 케임브리지 과학단지에는 IT와 BT 분야 중심으로 소규모 벤처기업부터 세계 유수의 다국적기업 연구소에 이르는 100여 개의 첨단기업이 입주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성장한 기업들이 다시 주변지역에 정착하여 지역경제와 긴밀한 연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 환경에 매료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이곳에 연구소나 실험실을 설립하고 있다. 그렇다고 케임브리지가 고립된 발전의 섬은 아니다. 케임브리지는 영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런던과 M11 고속도로로 약 1시간 30분, 특급열차로 45분이면 바로 연결되며, 런던을 통해 유럽 대륙 및 세계 전역과 연계되고 있다. 또 런던-옥스퍼드-케임브리지를 있는 이른바 골든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을 형성하여 점차 쇠락해가던 영국 산업의 새로운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시내 중심 킹스 퍼레이드 (King's Parade)거리
상가가 늘어선 케임브리지 시내모습
 
 
 

 

 
 
 


케임브리지의 다양한 즐거움

케임브리지는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도시이자 미래를 앞서나가는 첨단과학도시이지만 또한 세계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독특한 경관과 분위기를 보고 느끼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유명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칼리지들과 각종 도시 시설들이 밀집된 도심지역은 그리 넓지 않아서 30분 정도 걸으면 어디든지 도착할 수 있다. 도시 전체도 그리 크지 않아서 반나절 정도면 대부분의 도시경관을 볼 수 있다.

케임브리지를 방문한 외지인이 가장 목가적으로 도시를 구경하는 방법은 캠강을 따라 배를 타고 가면서 천천히 도시를 음미하는 것이다. 보트 경주에 나갈 학생들은 경주용 배를 타지만, 도시를 구경하는 관광객들은 긴 장대를 가지고 강바닥에 찍으면서 가는 펀팅(Punting) 배를 주로 탄다. 펀팅은 쉬워 보이지만 초보자들이 긴 장대를 조작하기가 쉽지 않아서 보통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하는 케임브리지 학생을 뱃사공으로 쓴다. 수재들이 저어주는 배에 편안히 앉아 캠강을 가로지르는 여러 유서 깊은 다리들 - 뉴턴이 수학적 이론에 근거해 못을 전혀 쓰지 않고 만들었다는 '수학의 다리'나 베네치아에 있는 다리 이름을 본 딴 '탄식의 다리' 등 - 밑을 지나가면서 유명 칼리지들의 아름다운 건물과 정원들을 구경하고, 이곳 출신 명사들이 남긴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케임브리지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의 정취는 케임브리지 졸업생들은 물론 영국과 세계 각지의 우수한 인재들을 이곳으로 유인하는 문화적 힘이다. 이렇게 모여든 인재들 덕분에 케임브리지는 앞으로도 인류의 미래를 위한 연구와 실험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