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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 남효온(南孝溫)이 말하는 술의 미덕과 해악

술꾼 남효온(南孝溫)이 말하는 술의 미덕과 해악
  사람의 음식은 민족과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아마도 지구상에 술이 없는 나라, 술을 마시지 않는 민족은 없으리라. 인간에게 술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좋은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술이 없으면 사람들이 모인 자리가 얼마나 싱겁겠는가. 그렇지만 술만큼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음식이 또 있을까. 사람으로서 차마 못할 범죄가 술의 힘을 빌려 자행되고 있다. 우리 민족만큼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민족도 드물다고 한다. 요즘은 세상살이에 경쟁이 심하고 살기가 힘들다 보니, 불안한 마음을 술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 급기야 주폭(酒暴)이란 신조어까지 생기고 말았다. 술이 오히려 액운을 만났다 해야 하지 않을까. 조선전기의 기인으로 술을 매우 좋아했던 남효온은 술의 미덕과 해악을 낱낱이 들면서 자신이 술을 끊어야 하는 이유를 밝혔다.

  대저 술의 좋은 점은 경서(經書)와 다른 옛 기록들에 상세히 실려 있습니다. 술이 적당하면 주인과 손님을 합할 수 있고 노인을 봉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술은 가까이 방 안에서 마셔도 좋고 멀리 천지(天地)간에도 두루 어그러지지 않으며 시름겨운 뱃속은 술을 마시면 풀리고 답답한 가슴은 술을 마시면 편안해져, 흐뭇한 기분으로 천지와 그 조화가 같고 만물과 그 조화가 통하여 옛 성현이 사우(師友)가 되고 천백 년이 한가한 세월이 됩니다. 그러나 술이 적당하지 않으면 봉두난발(蓬頭亂髮)로 머리를 풀어 헤치고서 늘 노래하고 어지럽게 춤추며, 주인과 손님이 절하는 엄숙한 자리에서 제멋대로 소리치고 주인과 손님이 읍양(揖讓)하는 공손한 때에 넘어지고 자빠져서 예의를 무너뜨리고 의리(義理)를 없애며 절도 없이 행동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까닭 없이 제 마음대로 눈을 부라리다가 혹 싸움이 일어나서 작게는 몸을 죽이고 중간으로는 집안을 망하게 하고 크게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경우가 흔히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술의 나쁜 점이 이와 같지만 주공(周公)이나 공자가 마시면 정신이 흐려지지 않고, 술의 좋은 점이 이와 같지만 진준(陳遵)이나 주의(周顗)가 마시면 제 몸을 죽였으니, 그 득실(得失) 사이에는 터럭만한 차이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타고난 바탕이 중간 수준 이하 사람은 마음을 단단히 잡고 술을 절제하면서 마시지 않으면 좋은 술맛이 사람을 변하게 하여 심신이 더욱 위태롭고 더욱 혼란하다가 점점 술주정을 하는 데 이르면서도 자신이 주정하는 줄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따라서 선비로서 뜻이 견고하지 못한 사람은 응당 몸소 신칙(申飭)하고 안으로 반성하여 혼란의 뿌리를 막고 끊는 노력을 보통 사람보다 백배나 더해야만 술의 재앙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술을 경계하는 글로 《서경》에는 〈주고(酒誥)〉가 실려 있고, 《시경》에 〈빈지초연(賓之初筵)〉이 있으며, 양자운(揚子雲)이 이로써 주잠(酒箴)을 지었고 범노공(范魯公)이 이로써 시를 지었으니, 제가 어찌 조용히 술잔을 잡고서 향음주례(鄕飮酒禮), 향사례(鄕射禮)의 자리에서 진퇴(進退)하고 읍양(揖讓)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마음이 약하고 덕이 적은 사람이라 술맛을 탐닉하다 절제하지 못하면, 마치 초파리가 깃털 하나를 짊어질 수 없는 것처럼 저 자신 마음이 산란해져서 술을 못 이기게 될까 두려울 뿐입니다.
  저는 젊어서부터 술을 몹시 좋아하여 중년에 구설(口舌)에 오른 적이 많았기에 제멋대로 주정뱅이 짓을 하여 세상에 영영 버림받은 사람이 되는 것을 제 분수로 여겼습니다. 몸은 외물(外物)에 끌려가고 마음은 육체에 부려져서 정신력은 예전에 비해 절로 줄었고 도덕은 처음 마음을 날로 저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점점 부덕(不德)한 사람이 되어 집안에서 마구 주정을 부려 어머님께 수치를 크게 끼치고 말았습니다. 맹자는 ‘장기 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님의 봉양을 돌아보지 않는 것’을 불효라 하였거늘, 하물며 술주정이야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술이 깨고서 스스로 생각건대, 그 죄가 삼천 가지 중의 으뜸에 해당되니, 무슨 마음으로 다시 술을 들겠습니까. 이에 천지(天地)에 물어보고 신명(神明)께 절하고 제 마음에 맹세한 뒤에 어머님께 아뢰기를, “지금 이후로는 군부(君父)의 명이 아니면 감히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렇게 한 까닭은 술 취하는 게 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에게 제사지내고 제육(祭肉)을 받으면 음복(飮福)이 있고, 축수(祝壽)를 올리고 술잔을 돌려받으면 맛좋은 술이 뱃속을 적셔도 정신이 어지럽지 않는 경우는, 제가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저의 뜻이 대략 이와 같으니, 선생께서 비록 술을 마시라고 권하는 말씀을 하셨지만, 이미 말해놓고 식언(食言)할 수 없는 사정이 이와 같습니다. 제 말은 어길 수 있을지라도 제 마음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제 마음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신명을 기만할 수 있겠습니까. 신명은 기만할 수 있을지라도 천지를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천지를 무시한다면 어느 곳에 이 몸을 두겠습니까. 더구나 어머님께서 저를 기르며 늘 술을 줄이라고 하시다가 제 말을 듣고 얼굴에 기쁜 빛을 보이셨으니, 술을 끊겠다는 맹서를 어찌 바꿀 수 있겠습니까.
  아아! 술 깬 굴원(屈原)와 술 취한 백륜(伯倫)이 본래 둘이 아니고, 맑은 백이(伯夷)와 너그러운 유하혜(柳下惠)는 결국 하나의 도입니다. 선생께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저를 억지로 허물하지 마시고 제가 술을 마셔도 되는지 안 되는지 그 가부(可否)를 한 글자로 분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夫酒之爲德, 五經子史詳矣. 得其中, 則可以合賓主, 可以養耆老, 行之几席而有文, 達之天地而不悖, 愁腸得酒而解, 鬱臆得酒而泰, 怡然與天地同其和, 萬物通其化, 古聖賢爲師友, 千百年爲閑中; 失其中則囚首散髮, 恒歌亂舞, 叫呼乎百拜之間, 顚仆於相讓之際, 敗禮滅義, 發作無節, 甚者, 無故而憑心怒目, 爭鬪或起, 小而殞身, 中而亡家, 大而亡國者比比有之. 是故, 酒禍如此, 而周公孔子用之則不亂; 酒德如此, 而陳遵周顗用之則殺身. 其得失之間, 不容一髮, 可不愼哉! 是故, 中下之人, 所執不堅, 而用之不節, 則甘味移人, 愈危愈亂, 漸至於酗, 而不知其所以酗者, 有理之必然. 爲士而志不堅者, 當躬飭內訟, 杜絶亂根, 百倍平人, 然後可以免此禍矣. 是故, 書載戒酒之誥, 詩有賓筵之篇, 揚子雲以之著箴, 范魯公以之作詩, 吾豈不欲從容桮酒, 進退揖讓於鄕飮鄕射之間哉! 但恐心弱德薄, 甘其味而不節, 則散亂而不自勝, 有如醯鷄之不能負一羽耳. 僕自少酷好麴糱, 中歲遭齒舌不少, 肆爲酒狂, 自分永棄. 身爲物役, 心爲形使, 精神自耗於曩時, 道德日負於初心, 不意馴致不德, 肆酗於家, 大貽慈母之羞. 孟子以博奕好飮酒不顧父母之養爲不孝, 況於酗乎! 醒而自念, 則罪在三千之首, 何心復擧桮酒乎? 於是, 質之天地, 參之六神, 誓之吾心, 告諸慈堂, 自今以後, 非君父命, 不敢飮. 所以如此者, 惡其醉也. 若夫祭神而受胙則有飮福, 獻壽而有酬則甘醇美醴沃腸而不亂者, 吾何辭焉? 僕之志, 大略如此; 先生雖有勸酒之敎, 言之不可食也如此. 吾言可食, 吾心可欺乎? 吾心可欺, 鬼神可謾乎? 鬼神可謾, 天地可忽乎? 天地可忽, 則措諸身何處? 況慈母育子, 每敎省酒, 及聞此語, 喜動於色; 斷酒之誓, 庸可渝乎? 嗚呼, 醒屈醉倫, 本非二致; 淸夷和惠, 竟是一道. 先生不可強以不飮之穆生爲累, 冀以一字示可否. ]

- 남효온(南孝溫) 〈동봉산인에게 답하는 편지(答東峯山人書)〉 《추강집(秋江集)》

        ▶ 단원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 중 부벽루연회도(부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이 동봉산인(東峯山人) 김시습(金時習)에 보낸 편지이다. 술을 끊었다고 선언한 남효온에게 김시습이 아주 끊지는 말고 적당히 마시라고 간곡히 권한 데 대해 답한 것이다.

  남효온과 김시습은 절친한 술친구였다. 그런데 남효온이 어느 날 갑자기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보고 김시습은 퍽 서운했으리라. 그래서 김시습은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를 들어서 술을 마시라고 권하였고, 남효온은 술에 얽힌 많은 고사를 인용하면서 자신이 술을 끊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글이라 점잖게 표현한 것이지, 사실 김시습은 몹시 서운했고 남효온은 김시습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면서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한 것이다. 오늘날 술친구들끼리 만났을 때 술을 마시지 못하면 한쪽은 서운하고 한쪽은 미안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글을 읽으려면 먼저 인용된 고사들을 알아야 한다. 《논어》 〈향당(鄕黨)〉에 공자는 “술을 마심에는 일정한 양이 없었으나 정신이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唯酒無量 不及亂]”고 하였다. 진준(陳遵)은 한(漢)나라 때 사람으로 술을 좋아하여 호기가 있어 손님들이 집에 모여 술을 마시면 대문을 닫아 빗장을 걸고 손님들이 타고 온 수레의 굴대빗장을 죄다 우물에 던져 넣어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진준투할(陳遵投轄)이란 고사성어가 생겼으며, 회양왕(淮陽王)이 패했을 때 술에 취해 있다가 적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주의(周顗)는 진(晉)나라 때 사람으로 술을 몹시 좋아하여 술 때문에 실수가 잦았고, 결국 왕돈(王敦)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주고(酒誥)〉는 강숙(康叔)이 은(殷)나라 고도(故都)로 부임할 때 그 지역 백성들이 술을 너무 좋아하므로 무왕(武王)이 이 글을 지어 경계하였다고 한다. 〈빈지초연(賓之初筵)〉은 위(衛)나라 무공(武公)이란 임금이 술을 마신 뒤 허물을 뉘우치는 뜻을 읊은 시라고 한다. 범노공(范魯公)은 북송(北宋)의 명재상인 노국공(魯國公) 범질(范質)을 가리킨다. 조카 범고(范杲)가 자신을 천거해주기를 바라자 범질이 “너에게 술을 즐기지 말기를 경계하노니, 술은 미치게 만드는 약이요 좋은 음식이 아니다.[戒爾勿嗜酒 狂藥非佳味]”는 내용의 시를 지어주었다. 향음주례는 한 고을 사람들이 모여 나이 순서에 따라 술을 마시던 것이고, 향사례는 활쏘기를 한 다음 술을 마시던 것인데 모두 예법에 따라 술을 마셨던 고대의 제도이다.
  공자는 “다섯 가지 형벌의 종류가 3천 가지이지만 불효보다 더 큰 죄는 없다.[五刑之屬三千 而罪莫大於不孝]”고 하였다. 《孝經》에 나오는 말이다. 굴원(屈原)은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충신으로, 〈어부사(漁父辭)〉에서 “뭇 사람들은 모두 취했으나 나 홀로 깨어 있다.[衆人皆醉 我獨醒]”고 하였다. 백륜(伯倫)은 진(晉)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유령(劉伶)의 자(字)이다. 그는 술을 몹시 좋아하여 〈주덕송(酒德頌)〉을 지어 술을 예찬했었다. 맹자가 말하기를, “백이는 성인으로서 맑은 분이고, 유하혜는 성인으로서 너그러운 분이다.[伯夷聖人之淸者也 柳下惠聖人之和者也]”고 하였다.

  잘 마시면 술만큼 좋은 음식도 없다. 그렇지만 아예 술 조절이 안 되는 남효온 같은 사람에게 술은 자신을 해치는 독이 된다. 남효온이 집안에서 무슨 주정을 부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기 어머니에게 큰 수치를 끼쳤다고 하면서 천하의 주객(酒客)인 그가 술을 끊을 정도였다면 작은 실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김시습의 편지에서 남효온의 얼굴이 수척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 무렵 남효온의 건강이 이미 나빠졌을 것이다. 남효온은 이 때 술을 끊는다는 뜻을 담은 〈지주부(止酒賦)〉를 짓고 10년 동안 술을 끊었다가 다시 술을 다시고 풍병(風病)이 생기자 또다시 5년 동안 술을 끊었다. 그렇지만 이미 건강을 크게 해친 터라 성종 23년(1492)에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남효온은 그 좋아하던 술을 오래 마시지도 못했다.

  고인의 문집을 읽다보면, 젊은 재사(才士)들이 술 때문에 일찍 요절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남효온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성품이 온화하고 담백하여 영욕을 초탈하고 물욕이 없었다. 그래서 스승인 김종직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우리 추강’이라 부르며 아꼈다고 한다. 세상에 욕심이 없고 마음이 맑은 그였기에 오히려 혼탁한 세상, 악착같은 사람들을 못 견디고 도피하여 술의 세계에 안주하기 쉬웠을 것이다.

  술이 없는 세상은 너무 싱겁고 섭섭하다. 그렇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갈수록 술이 무서워지고 있다. 술을 강제로 못 마시게 할 수는 없으니, 술자리에서 술잔 돌리는 규칙인 주령(酒令)이라도 다시 정해야 하지 않을까.